나는 어릴 적부터 이런 말들이 싫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돌아서면 답답하고 힘들다 하면서 왜 꾹꾹 인내하며 참고 살아내는 것을 당연하다 하는 건지.
마음을 어떻게 비우나. 마음은 비워질수 없다.
'내 탓이오' 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맞춰주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고 그 삶이 맞다고 하는 건지.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그 말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내 주장만 펼치며 주위를 무시하고 내 편한 대로만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에 따라 상응하는 관계의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된다. 하지만 내가 변한다고 상대가 변하는 공식이 매번 성립되지는 않는다. 사람 따라 다르고 변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고 기대해 봐야 나의 인생만 갉아먹게 된다.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의 귀한 인생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 싫었다.
아니 아까웠다. 최소한 내가 상대에게 쏟는 에너지의 반이라도 행복하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나의 태도와 상대의 태도가 어긋맞거나 일방적이고 불공평한 불균형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잘하면 되겠지' '내 자신을 죽이고 대하다 보면 상대가 변화되겠지' 하는 생각과 말은 어불성설이고 삶과 자신에 대한 교만한 태도다.
아침마당 같은 프로에서 부부문제를 다룰 때 패널로 나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랬다. 결론을 미리 가지고 나온 듯,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처럼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들은 늘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처럼.
사람은 똑같다. 사람의 본성이나 마음은 똑같다.
사랑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한 거라지만 나는 사랑을 받고 싶다. 한없이 맞춰주고 사랑을 주고도 외롭고 공허하고 쓸쓸해진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연인이고 부부라면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간섭받지 않고 판단하고 선택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다. 매번 매 순간 만족하며 행복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필요가 충족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한없이 배려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그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눅 들고 아프고 힘들고 눈치를 보고 있다면 마음에서 끊어라.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주지 말고 속엣말은 더더욱 하지 말고 인사 정도로 끝내라. 나는 나의 행복에 이기적이고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 다짐에 해가 되는 상황이나 대상이 있다면 참지도 견디지도 싸우지도 화내지도 않고 외면하기로 했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보다 봉오리 상태일 때 더 이쁘다. 감추어져 있고 궁금하고 기대할 때 설렘이 더해진다. 비바람이 치는 화요일 오후.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든 세상을 다 살아본 사람처럼,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마음이 넓은 사람인양 충고하지 마라. 당신이 그렇듯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 하나 알아주기를 원하고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