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엇을 할 때 처음으로 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아이, 첫 월급, 첫 눈 등 많은 단어가 ‘첫’하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첫’이라는 관형사는 맨 처음의 뜻입니다. 이 ‘첫’이라는 관형사를 다른 단어 앞에 쓰면 그 단어가 혼자 있을 때보다 엄청나게 멋져 보입니다.
저는 첫 직장이 은행이었는데 1년 6개월밖에 근무를 안 해서 두 번째 직장인 데이콤을 첫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신회사였던 데이콤은 한국통신(현재 KT)이 독점해오던 시외전화서비스를 1996년 1월에 개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문에서 데이콤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여 1995년 7월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시외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전화 요금을 계산하고 청구하는 빌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부서였습니다. 제가 배정된 팀은 수납, 미수 업무를 개발하는 팀이었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던 1996년 12월 26일에 김영삼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이른바 노동법 날치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데이콤 직원뿐 아니라 많은 노동자들이 개정된 노통법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기 위해 을지로, 명동 등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노조원이 아니었던 유복상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노동자로서 최선을 다해서 싸우되 일사불란하게 잘 도망쳐서 경찰에게 잡히지는 마라” 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이때부터 생긴 우리 팀의 또 다른 이름은 일사불란이었고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우리 OB 모임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사불란 팀원들은 여러 다른 회사와 개인 사업 등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왔고, 지난 30년간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여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만남을 지속해왔습니다. 첫 회사의 첫 팀이었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은 가명입니다.)
모임을 만든 지 30년째인 2025년 9월에 우리는 두 가지 ‘첫’이 들어가는 행사를 계획했습니다. 하나는 첫 야유회로 제가 농사짓고 있는 주말농장에서 삼겹살과 낮술 파티를 하면서 직장생활로 지쳐있는 심신을 자연에서 풀어보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첫 라운딩으로 각자 갈고 닦았던 골프 실력을 겨뤄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임을 하려면 예약 및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50 대 중반인 제가 팀에서는 막내라서 모든 것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우리 팀과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한다는 기대감이 있어서인 것 같습니다.
첫 야유회인 10월 11일 토요일에는 고기와 술을 사고, 버너와 불판 등을 준비해서 이른 아침 주말농장으로 갔습니다. 원두막을 깨끗이 청소하고, 상추, 고추 등 쌈을 위한 야채를 씻어 준비하는 동안 팀원들을 위한 마음이 컸습니다. 4시간 정도 맛있는 삼겹살과 낮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좋았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첫 라운딩인 11월 7일은 첫 야유회보다 기대가 더 되었습니다. 초록 잔디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가득 찬 골프장에서 잘 치는 것 보다, 같이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골프장 중의 하나인 여주 신라CC 동 코스에서 서 코스로 진행했습니다. 티 오프 시간 8시 23분보다 약간 늦게 시작된 우리의 첫 라운딩은 4시간 반 동안 정말 눈 깜빡하니까 지나갈 정도로 화기애애하고 즐거웠습니다. 잘 치면 잘 치는 대로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함께 잔디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의 첫 라운딩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일년에 한번은 라운딩을 하고, 더 자주 보자는 작은 바람을 남기고 각자의 공간과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첫 직장, 첫 팀의 팀원들과 첫 야유회, 첫 라운딩을 한 특별한 2025년이었습니다. 한동안 저에게 그 기억은 자꾸 생각났었는데 다시 저는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상 속에 있습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 느낌이 다시 일상 속에 파묻히는 거죠.
처음이라는 것은 낯설고 두려우면서 새롭고 기대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것들은 모두 처음인 것 같다. 오늘이 내 생애 처음이고 숨 쉬는 것부터 오늘 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인 겁니다.
뭔가 특별하고 의미 있는 처음보다는 내 곁의 처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회사나 집에서 일상 속에서 처음을 같이 하는 사람을 더 아끼고 생각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95년의 사람들과 2025년의 처음을 가진 것 처럼 2025년 함께 한 사람들과 언젠가 새로운 처음을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