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만들기 굉장히 어려운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다.
맞벌이를 하시느라 늘 바쁘셨던 엄마였지만 매일 아침을 정성스럽게 챙겨주셨고, 좀 여유가 있는 주말이면 맛있는 요리들로 식탁을 채워주셨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늘 요리하셨던 엄마지만 유독 김밥만큼은 사서 보내셨던 기억이 있다. 유치원 소풍 때 모든 재료를 가늘게 썰어서 미니어처 김밥(속 재료를 적게 넣은 꼬마 김밥이 아니라 모든 재료가 작게 들어간 그야말로 미니어처 김밥이었다.)을 만들어주셨던 기억만으로 엄마와 김밥에 관한 내 기억은 충분히 행복했기에 이에 대한 불만이 조금도 없었다. 다만 늘 궁금하기는 했다. 온갖 요리를 해주시는 엄마가 왜 김밥만큼은 안 해주실까?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김밥 만드는 수고에 대해 이해하게 된 후였다. 한 입에 간편하게 쏙쏙 먹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김밥은 매우 간편한 음식이지만 모든 재료를 각각 준비해서 씻고 손질하고 요리해서 하나로 말아 자르는 일은 절대 간편하지 않았다. (그 과정을 줄줄이 쓰기만 해도 숨이 차는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어떤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다.
다만 얼마 전부터는 김밥이 그렇게 거창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있는 거 넣고 말면 되잖아?'
냉장고 속 진미채를 넣고 말면 진미채 김밥, 멸치 볶음을 넣고 말면 멸치 볶음 김밥. 그런 식으로 그냥 있는 재료들을 넣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평소 잡곡밥을 먹는 우리 집에서 김밥을 하려면 쌀밥을 따로 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따로 준비하지 않고 먼저 있던 잡곡밥을 쓴다. (사진 속 냉이 김밥도 전 날 해서 보관했던 잡곡밥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다 생략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김밥 싸는 일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덕에 집에서 냉이 김밥을 싸는 일도 가능해졌다.
냉이 김밥 레시피를 정리하면서 엄마랑 많이 싸웠다. 전에도 분명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었는데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레시피니까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엄마는 맛있어야 하니까 당근과 달걀 등 이것저것 더 넣어야 한다고, 나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맛을 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이걸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너 혼자 알아서 해!" 하셨지만 결국 혼자 김밥 만들 준비를 하고 있으니 쓱 다가와서 준비를 도와주셨다. 그렇게 싸우면서 만들어 놓고는 라면까지 끓여서 맛있게 먹고, 남은 김밥으로 다음 날 도시락을 싸드렸더니 신나게 가져가셨다. 아마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들을 바라보며 드셨겠지. 이제 비로소 완연한 봄이 왔음을 느낀다.
재료 (2줄)
- 김 2장
- 밥 320g
- 냉이 260g
- 소금, 참기름, 액젓(비건은 연두)
만들기
1. 냉이를 잘 다듬어서 소금물에 데친 후 물을 꼭 짠다.
2. 데친 냉이에 참기름 1T, 액젓 0.5T를 넣고 무친다.
3. 밥에 참기름 1T, 소금 1/3ts를 넣고 섞어준다.
4. 양념한 밥을 둘로 나눠 김 위에 얇게 편다.
5. 양념한 냉이를 둘로 나눠 길쭉하게 올리고 만다.
6. 참기름을 바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Tip
- 냉이는 데치면 양이 매우 줄어들기 때문에 많다 싶을 만큼 준비해야 한다.
- 냉이를 무칠 때는 잎이 으스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꼭꼭 힘줘서 무쳐야 양념이 골고루 밴다.
- 김밥의 밥은 진 밥보다 고슬고슬한 밥이 좋다.
- 김에 밥을 펼 땐 김이 보일 만큼 얇게 편다.
- 좀 더 씹히는 맛을 원하면 씻은 묵은지를 길게 썰어 넣는다.
- 참치마요(참치 1캔+마요네즈 3T+설탕 0.5T)와 함께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