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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의 채소와 맛, 쪽파와 파강회

by 헤아림




청명

양력 4월 5일쯤, 봄꽃이 가득한 맑고 화창한 봄날

옥수수, 토란, 당근 심기, 날씨 점 보기





부모님의 농사에 나도 한 발 담가보기로 마음먹으면서,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결정하면서 제일 먼저 고민한 것은 어떠한 기준으로 기록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실시간 일기를 주기적으로 남길까 싶었다. 꾸준한 기록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간 순으로 일기를 쓰는 일은 그나마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뭔가 더 정리된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때마다 수확한 채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얘기까지 더하려니 수확물에 기준을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고민 끝에 절기에 맞춰 수확하는 채소의 이야기를 하는 지금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 이런 방식으로 기록하기를 선택하면서 9월에 수확할 땅콩과 10월에 수확할 생강에 대한 기록을 지금부터 시작하게 될 줄은. 그동안은 한 곳에 그저 쌓여만 가던 사진들에 "땅콩", "생강"이라는 이름을 달아 폴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참 지나 나올 글들이기에 그때까지 쌓인 사진 무덤 속에서 원하는 사진을 찾으려면 어디 있는지 찾느라 애를 먹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5~6개월 후에 대한 기록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니 머리가 복잡하면서도 할 얘기도 함께 쌓여간다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사실 오늘까지 3개의 채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금치, 냉이, 쪽파 모두 내가 씨를 뿌려 키운 채소가 아니라 이미 지난가을에 부모님이 씨를 뿌리셔서 자라난 걸 내가 수확만 했다는 게 매번 아쉬웠다. 씨를 뿌리고 크는 모습도 계속 지켜봐 왔어야 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텐데 지금에서는 물어물어 들은 대답을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쪽파를 수확하며 그 시작을 알고 싶어서 아쉬운 대로 이것저것 물었다. 첫 시작은 가을에 쪽파 종구를 심는 일이다. 종구는 일종의 씨앗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5~6월쯤 되어 쪽파의 머리 부분이 단단해지며 생긴다. 하얀 파의 머리 부분이 불그스름하게 물들면 종구가 여물었다는 신호다. 그것을 수확해서 잘 말려두었다가 이른 가을에 다시 심어주는 것이다.



지금 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는 대파의 모종. 어린 쪽파가 자라는 모습도 비슷하다고 했다.



이른 가을에 심어준 쪽파는 늦은 가을 1차로 수확해서 김장에 사용한다. 김장에 사용하고 남은 쪽파를 밭에 그대로 남겨두면 겨우내 땅 위의 잎은 얼어 시들어 버리기 때문에 얼핏 모두 얼어 죽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땅 속의 뿌리 부분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이듬해 봄 다시 싹을 틔운다. 그러니까 지금 먹고 있는 쪽파는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어 다시 자라난 것들이다. 좀 더 먼저 알고 관심을 가졌으면 봄이 되어 새로 자라나는 쪽파라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밭 한쪽에서 열심히 크고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버린 순간들이 뒤늦게 아쉽다.



아래쪽 마른 잎들이 겨우내 얼어 시들어버린 것들이다. 그 위쪽으로 싱싱한 쪽파가 새로 자라났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절기에 해당하는 채소들을 하나씩 정해두었다. 그때 가장 먼저 결정했던 것이 의외로 쪽파였다. 동생의 생일쯤이 쪽파의 제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생신상을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준비해 주시는 생일상에는 생일의 주인공이 좋아하는 음식과 그때의 제철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그날도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아빠가 좋아하시는 잡채를 만들고 있었다.


"큰 딸 생일에는 큰 딸이 좋아하는 황태구이를 하지. 작은 딸 생일에는..(생각하고) 파강회를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쪽파가 그때 제일 연하고 맛있거든!"


엄마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꽤 오래전, 아마 동생이 초등학생이었던 시절부터 동생의 생일상에 파강회가 올라왔던 것 같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도 특별한 편식이 없던 자매였다. 특별히 고기를 찾는 편도 아니어서 엄마가 해주시는 채소 반찬에 불만을 가졌던 적이 전혀 없다. 어렸을 때 나의 최애 반찬은 마늘종 무침이었고, 동생은 김치를 제일 좋아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린이의 생일 음식으로 파강회는 좀 그렇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며 동생을 봤는데 "파강회 맛있지." 하며 그저 웃는다.


어제 동생이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전 날부터 먹을 것을 이것저것 준비하던 엄마가 얘기하셨다.


"작은 딸도 오는데 파강회 한 번 할까?"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동생 생일에 파강회는 먹어야지.'







재료 (30개)


- 쪽파 30개

- 오징어 1.5마리

- 파프리카 2개

- 초고추장





만들기


1. 쪽파를 손질하여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머리부부만 먼저 익힌다.

2. 머리가 어느 정도 익으면 전체를 담가 데친다.

3. 파프리카를 길쭉하게 자른다.

4. 오징어를 손질하여 데치고 파프리카와 같은 길이로 썬다.

5. 오징어와 파프리카를 색깔별로 한 조각씩 잡고 파로 둘둘 말아준다.

6. 파 끝부분을 둘둘 말린 곳에 끼워 고정한다.





Tip


- 위의 재료 외에 맛살, 햄, 치즈 등과 조합해도 좋다.

- 파를 말다 보면 공기가 차서 부푸는데 파의 뾰족한 끝부분을 손톱으로 살짝 잘라내고 그 구멍으로 공기를 빼주면 된다.

- 데친 파가 남으면 파만 둘둘 말아서 완성한다.

- 초고추장 대신 머스터드소스를 곁들이기도 한다.



"제철"의 시기가 늦어서 청명의 채소와 요리 이야기가 동시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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