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4월 20일쯤, 곡식을 깨우는 비가 내리는 날
땅콩, 생강, 들깨(깻잎 용) 심기, 볍씨 불리기
지난번 절기에 대해 얘기하면서 (05화 24절기를 기록하는 일) 기후 변화라 하면 예상할 수 없는 날씨가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고 했었다. 내가 전보다 유난히 날씨 변화에 신경 쓰게 된 것도 있겠지만 올봄 유독 평년보다 추운 날씨와 더운 날씨가 반복적으로 오가는 느낌이다. 어느 날은 우박이 우수수 떨어지고, 어느 날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밤새 두고 온 농작물에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매일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디 별일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 어떤 가혹한 변화에도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를.
농사를 거들기 시작한 뒤로 먹기만 할 때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운다. 지금과 같은 계절에 하는 일은 주로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작물에 따라 파종판에서 모종을 만들어 나중에 밭으로 옮겨심기도 하고, 밭에 직접 씨앗을 심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작물은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씨앗을 떨어트리고 싹을 틔우기도 하는데 이렇게 자연 그대로 야생에 존재하며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산나물 또는 산채라고 부른다. 도라지, 고사리, 명이, 곰취, 돌나물, 그리고 얼마 전 얘기했던 냉이(09화 춘분의 채소, 냉이)와 오늘 이야기할 참나물 역시 이러한 산나물 중 하나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참나물과 취나물이 참 헷갈렸다. 둘 다 세 글자 이름에 단 한 글자만 다른 데다 그마저도 ㅊ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심지어 둘은 나오는 시기마저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둘이 전혀 다른 나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잎의 모양부터가 확연하게 다르다. 참나물의 잎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고, 취나물은 그렇지 않다. 둘은 향과 먹는 방법에 있어서도 많이 다르다. 참나물은 상큼한 향이 나서 샐러드를 만들거나 생으로 무쳐서 먹는 경우가 많고, 취나물은 쌉싸름하고 구수한 향이 나서 주로 데쳐서 무치거나 볶아 먹는다. 알고 보면 이렇게나 다른 식물을 그동안 헷갈려했다니 조금만 관심 갖고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내가 참나물을 먹은 게 언제부터였을까? 다른 채소들은 어렸을 때부터 먹어온 기억이 있는데 유독 참나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과 3~4년 전부터 서야 먹은 기억이 있다. 편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기에 특별히 싫어서 피해온 것도 아닐 텐데 지금 나의 참나물을 향한 사랑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그 기간으로 따지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가만 생각하면 참나물이 메인인 음식이 별로 없다. 앞서 내가 헷갈려했던 취나물만 해도 일상적으로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이었는데 참나물은 그렇지도 않았다. 어디 무침 요리를 할 때 곁다리로 들어가는 정도일까. 그래서 그전에는 참나물의 향도 잘 몰랐는데 이를 알고 난 이후에는 보기만 해도 그 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 미나리 향 같기도 하고, 파슬리 향 같기도 하고, 셀러리 향 같기도 하다. 지금 나열한 채소만 봐도 하나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참나물도 좋아하는 거겠지,라고 쓰려다 보니 내가 안 좋아하는 채소가 있나 싶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산나물의 한 종류인 참나물은 한 번 심고 일부를 수확하지 않고 남겨두면 시간이 지나 꽃을 피우고, 꽃이 지고 난 후 씨앗을 맺고, 그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또다시 새싹이 움튼다. 그렇게 자리 잡은 우리 밭 참나물의 자리는 매실나무 아래였다. 요즘의 매실은 활짝 피웠던 꽃을 모두 떨어트리고 열매 맺을 준비를 하는 중이다. 이런 매실나무 아래서 참나물이 자라는 덕분에 동그란 매화 꽃잎을 소복이 맞은 참나물을 볼 수 있었다. 매실나무도 어디 가지 않고, 참나물도 그 자리에서 계속 씨를 뿌리고 자랄 테니 매년 이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봄의 기쁨이 하나 더 늘었다.
그러나 사실 참나물의 자리는 한 곳에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매실나무 아래 가장 많이 모여 군락을 이루고는 있지만 이곳저곳 여행하던 씨앗이 자리 잡고 싹을 틔우는 곳이 바로 참나물의 자리였다. 수로를 타고 저 멀리까지 이동해 한참 아래쪽 밭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새 밭을 만들기 위해 땅을 갈고 잡초를 뽑고 있던 아빠가 한쪽 끝에서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있는 참나물을 발견하고는 남겨 두셨다.
"이렇게 예쁘게 자랐는데 차마 아까워서 못 갈았네."
그 뒤로 숨은 그림 찾기 게임을 하듯 곳곳에 숨어 있는 참나물 찾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참나물은 정말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고 정리하다가 하우스 옆 경계석 틈에서 이제 막 발아한듯한 아주 작은 참나물을 발견했다. 그야말로 이제 막 발아한 아주 작은 개체라 세 갈래로 갈라진 본잎과 다르게 가늘고 길쭉한 떡잎까지 볼 수 있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하던 일을 정리하고 집에 갈 채비를 하던 중에는 딸기 밭 사이에 꼭꼭 숨어 있는 것도 발견했다. 세 갈래로 갈라진 톱니 달린 잎이 얼핏 보면 딸기 잎과 비슷했지만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이 역시 참나물이었다. 비슷한 잎 사이에 잘 숨어서 눈에 띄지 않은 덕에 부쩍 자란 모습이었다. 그래, 이번 판은 좀 어려웠다. 참나물의 엄청난 숨기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농사를 짓고 계시거나 산나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지금까지 내 글을 보면서 순 엉터리네, 했을 수도 있다. 사실은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나물이 참나물이 아니라 파드득나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글을 준비하면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이번 주에는 참나물에 대해 쓸 거라는 나의 말에 엄마가 한 마디 덧붙이셨다.
"근데 그게 참나물이 아니라 파드득나물 같은데.."
엄마도 여태 참나물로 알고, 우리 가족 모두 참나물로 알고 먹어 왔던 게 사실 참나물이 아니었다니!
엄마도 작년 참나물 시즌이 끝날쯤에나 그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이곳에 농사 기록을 남기듯 엄마도 전국에 농사짓는 분들이 모여 계신 밴드에 꾸준히 기록을 남겨오셨다. 여느 때처럼 키우고 수확하고 맛있게 먹는 이야기를 올렸는데 누군가가 이건 참나물이 아니라 파드득나물 같다는 댓글을 남긴 것이다. 그제야 찾아보니 우리 집 나물은 파드득나물이 맞았다. 참나물과 파드득나물은 실제로 모양도 비슷하고 나오는 시기도 비슷해서, 그리고 먹는 방식마저도 비슷해서 우리처럼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덕에 산림청에서 나서서 둘을 비교하고 그 구분법을 소개했다.
산림청에서 소개한 여러 구분법에 따르면 참나물과 파드득나물은 잎자루 색이나 꽃 모양도 다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경작지에서나 관찰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판매하는 모습으로 참나물을 접하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기 힘들다. 잎만으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가장자리의 톱니 모양이다. 아래 비교 사진을 자세히 보면 참나물의 톱니는 규칙적이고, 파드득나물의 톱니는 불규칙적이다.
어쩐지 참나물 요리 영상을 보면 긴 줄기까지 짧게 잘라서 쓰던데 우리 밭에서 수확한 참나물(사실 파드득나물)은 줄기가 짧아서 따로 잘라먹을 일이 없었다. '나는 그게 어린 순만 잘라와서 그런 줄 알았지 이게 참나물이 아닐 줄이야!' 하며 둘의 줄기 길이에도 차이가 있는지 찾아봤다. 찾는 중에도 참나물은 한 뼘 정도로 길게 자라고, 파드득나물은 그렇게 키가 크지 못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찾은 답은 줄기 길이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속았다고 생각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확신을 가지면 나중에도 틀린 사실을 진실이라 믿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아닌 것도 또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참나물과 파드득나물의 줄기 길이는 둘 다 비슷하게 10~20cm라고 한다.
조금 머쓱하지만 이제 정정한다. 우리 밭 곡우의 채소는 참나물이 아니라 파드득나물이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