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3형제 중에 막내, 그리고 아래로 여동생 둘이 있다. 중요한 점은 아빠의 형제들은 모두 아들만 있어서 내가 이 집안의 첫 손녀라는 점이다. 나도 여동생이 있긴 하지만 나이차가 많아서 동생이 가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것 밖에 없다고 한다. 이 말은 할머니와 함께 명절을 준비하던 기억이 있는 게 나뿐이라는 이야기기도 하다. 사촌오빠들도 조금씩 돕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할머니 옆에 딱 붙어서 가장 많은 심부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요리하고 누군가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어린 나에겐 그 어떤 책임감도 없으니까 모든 걸 그저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하고 즐겼던 것 같다.
할머니는 늘 차례상에 올릴 떡을 하나씩 준비하셨다. 그러면 할아버지부터 집안의 막내인 내 동생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둘러앉아 할머니가 준비해 두신 재료로 떡을 빚었다. 추석에는 송편을 빚었고, 설날에는 조금씩 종류가 바뀌어서 어느 해에는 찹쌀떡을, 어느 해에는 인절미를 만들었다. 덕분에 처음 찹쌀떡을 만들던 날 팥소를 넣겠다고 떡 반죽을 조물대다가 손에 온통 달라붙어 어쩔 줄 몰랐던 것도 모두 추억이 되었다. 여러 떡을 만들어 주시기는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만들어주셨던 것은 인절미였다. 매번 할머니 뒤를 쫓아다니며 1열에서 구경을 해온 덕에 인절미 만드는 과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댁 마당 한쪽에는 어른 허리 높이까지 오는 커다란 돌절구가 있었다. 찜통에 찐 반죽을 갖고 내려가서 그 커다란 절구에 넣으면 큰아빠가 절구만큼 커다란 절구공이로 떡을 찧어주셨다. 할머니가 물 묻은 손으로 반죽을 돌리면 큰아빠는 기다란 절구공이를 머리 위로 올렸다가 힘껏 내리쳤다. 할머니가 반죽을 뒤집으면 큰아빠가 내려치고, 할머니가 또 뒤집으면 또 큰아빠가 내려치고. 쿵덕쿵덕. 옆에서 보는 나는 혹시 할머니 손이 빠져나오기 전에 절구공이가 내려올까 엄청 조마조마했지만 오히려 두 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리듬을 맞춰 가셨다. 한 번은 내가 직접 반죽을 돌려 보겠다고 나섰으나 한 번 뒤집고 절구공이가 내려오기도 전에 겁을 먹고 움츠러들고, 또 뒤집고 움츠러들고를 반복하자 몇 번 해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그럼에도 저리 가라 얘기해 주셔서 감사할 만큼 크고 무거운 절구공이가 주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그렇게 여러 번 찧어서 찰기가 생긴 반죽을 다시 가지고 올라가면 거실에는 다리를 펴지 않은 커다란 밥상이 뉘어 있었다. 고물을 넓게 펼치고 그 위로 쫄깃한 떡 반죽을 올려 길쭉한 모양으로 만든다. 반죽에 고물을 골고루 묻히면 이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일만 남았다. 여기서 비장의 무기가 등장하는데 그건 바로 접시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의 접시를 세워서 날을 굴려 떡을 썰었다. 칼을 두고 왜 접시로 써는 건지 여전히 그 이유는 모르지만 지금도 그 떡의 맛보다 먼저 생각나는 게 접시로 떡을 썰던 일이라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들으면 무척 서운해하실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나와 7살 차이가 나는 내 동생이 할머니를 병원에 계신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양쪽 무릎이 불편해서 스스로 거동이 힘드셨기 때문이었지 그 외는 아주 건강하시고 말씀도 잘하셔서 그 누구보다 오래 사실 줄 알았다. 하지만 뇌출혈은 누구에게나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다. 아침 식사를 하시다 앞으로 고꾸라지셨다는 할머니는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슬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겠냐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라 더 슬펐다. 화장터에서 할머니 관이 들어가는 걸 보며 엉엉 울었다. 내가 좋아하는 묵 누룽지를 따로 빼놓으셨다가 건네시던, 떡을 만들며 간을 보실 때 내 입에도 꼭 하나씩 넣어주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다정한 말을 건네던 분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이게 다 할머니의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떡을 만들 때면 가장 먼저 할머니가 생각난다. 이제는 내가 만들어 드릴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 할머니는 또 이게 뭐냐고 타박하면서도 맛있게 드셔 주시겠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오래라 잊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번씩 생각나는 날이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재료 (약 16개)
- 늙은 호박 (손질 후) 200g
- 찹쌀 (불리기 전) 200g
- 소금 1t
- 카스텔라 1개
- 설탕 약간 (호박의 당도에 따라서)
만들기
1. 찹쌀을 씻어서 1시간 정도 불린다.
2. 호박 껍질을 까고 손질해서 2~3cm 크기로 깍둑썰기한다.
3. 불린 찹쌀의 물을 완전히 빼고 손질한 호박과 분량의 소금을 함께 믹서에 담는다.
4. 믹서의 다지기 날을 이용하여 너무 곱지 않게 간다.
5. 찜기 위에 물에 적신 면포를 깔고 간 재료들을 얹어 평평하게 펼친다.
6. 20분간 찌고 불을 끈 상태에서 5분 정도 그대로 두어 뜸을 들인다.
7. 면포 채로 꺼내 넓은 곳에 펼쳐 한 김 식힌다.
8. 조금 떼어서 간을 보고 입맛에 맞게 설탕을 넣는다.
9. 면포 위에서 이리저리 접어가며 반죽을 치댄다.
10. 네모나게 모양을 잡아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11. 카스텔라의 갈색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굵은 체에 갈아서 고물을 만든다.
12. 만들어 둔 떡을 고물 위에 굴려서 완성한다.
Tip
1. 다지는 도구가 없다면 믹서기로 덜 갈거나 찌고 나서 으깨도 된다.
2. 중간중간 간을 보고 입맛에 따라 소금과 설탕을 더한다.
3. 카스텔라 고물이 너무 달다면 고소한 콩가루로 대신한다.
4. 좀 더 단단하고 쫀득한 식감을 원한다면 냉장고에서 1시간 이상 굳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