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3월 5일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깨어나는 때
씨앗 고르기, 농기구 정비하기, 완두 심기, 씨감자 준비하기
우리 가족의 한 해 농사는 김장 이후 모든 게 마무리된다. 주말도 없이 매일 밭에 나가시던 부모님도 그 이후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나가서 밭을 정리하신다. 그러다 물이 얼어버릴 만큼 추운 겨울이 되면 밭에 수도를 잠그고 그제야 방학에 돌입한다. 종종 저장해 놓은 채소들을 가지러 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발길이 끊긴 춥고 쓸쓸하게 텅 빈 모습이다.
겨우내 그렇게 인적도 없는 밭을 지키는 기특한 월동채소들이 있다. 가을에 모종을 내어 밭에 옮겨 심어둔 마늘과 양파, 그리고 추위를 이기며 맛과 향이 더 깊어지는 시금치와 냉이가 그들이다. 아무리 월동작물이라지만 한겨울 추위를 맨몸으로 부딪혀서 이겨내기 어려우니 그 위로 부직포를 이불 삼아 씌워준다.
그중에서도 겨우내 수확해 먹을 수 있는 채소는 시금치뿐이다. 보통의 채소들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내내 옆에서 지켜보며 키워야 하는데 시금치는 그저 겨울의 추위가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다른 월동채소들마저도 겨울의 기운을 받고 봄이 되어 성장한 후에나 먹을 수 있지만 시금치는 겨우내 수시로 수확해 먹는다. 이를 위해 엄마가 시금치 씨앗을 양껏 뿌려 놓으신 덕도 있겠지만.
특히 올해는 구정에 내가 없을 예정이었기에 신정에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다. 그래서 신정에 맞춰 설음식을 준비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명절 음식인 잡채를 만들기 위해 12월 마지막 날 시금치를 수확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그때부터 경칩인 지금까지 밭을 오가며 만날 수 있는 채소는 여전히 시금치뿐이지만 이런 쌀쌀한 날씨에도 수확해 먹을 수 있는 싱싱한 채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반갑다.
그렇다고 모든 시금치가 겨울을 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동네를 산책하다 주민분이 일구시는 텃밭을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벌써 텃밭 주변을 서성이며 구경 중이다. 그러다 밭에 심긴 채로 얼어 죽은 채소들을 봤는데 시금치가 얼어 죽은 것이라고 했다. 월동을 하는 시금치 종류는 따로 있다고.
보통의 작물들은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씨를 뿌리고 수확한다. 그런데 시금치는 봄, 여름, 가을 모두 씨를 뿌리고 수확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씨앗을 심는 것은 아니다. 품종에 따라 여름의 무더위를 못 견디는 종류도, 겨울의 추위를 못 견디는 종류도 있으므로 시기에 잘 맞는 품종을 선택해서 심는 것이 중요하다. 주로 서양계 시금치는 봄에 파종하여 여름에 수확하고, 동양계 시금치는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에 수확한다.
날이 조금 풀리면 한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 덮어줬던 부직포를 일부 벗겨준다. 계속 부직포 아래 있던 무성하게 자란 시금치는 먼저 먹고, 걷어 준 부분의 시금치는 초봄의 추위를 마주하며 성장을 조금 늦춘다. 부직포를 일찍 걷어낸 곳의 시금치는 일부 얼고 시들기도 하지만 따뜻한 봄이 되어 다시 푸른 잎을 내어 줄 때 수확하면 된다. 너무 많은 양의 시금치가 한 번에 자라서 먹어 치우느라 힘들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사람마다 본인이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다를 것이다. 내가 '나 이제 어른이구나!'하고 느낀 순간은 시금치에서 단 맛을 느꼈을 때였다. 어렸을 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고 싶지 않았던 채소를 먹으며 거기서 단 맛을 느낀다니! 게다가 그게 편식의 대명사 시금치라니! 나 너무 어른 같잖아?
겨울에 먹는 시금치가 맛있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랐다. 그러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농학과 재학 중 서울시 농업기술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을 때였다. <텃밭 채소 재배 기술> 시간에 각종 채소를 심고 키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그중에 시금치도 있었다. (서양계 시금치는 여름에 수확하고, 동양계 시금치는 겨울에 수확한다는 사실도 이 수업에서 배웠다.) 이때 겨울을 버틴 시금치가 맛있는 이유도 알려주셨는데 그 이유는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얼지 않도록 내부의 당 농도를 높이기 때문이었다. 용액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어는점이 낮아지는 어는점 내림 현상이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농사는 과학이다.) 이 얘기를 듣고 나니 강추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쓴 녀석을 맛있다고 홀랑 먹어 버리는 게 미안한 마음도 잠깐 들었지만 괜한 인간의 시선을 대입하지 않기로 했다.
독립해서 살 땐 요리를 곧 잘해 먹는 편이었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걸 즐거워했다. 하지만 다시 본가로 들어오고 나서는 내가 요리하는 일이 없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요리는 엄마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친구들이 솜씨 좋은 엄마를 둔 것을 부러워할 만큼 엄마의 요리 실력이 뛰어났다. '요리는 엄마의 일이니까.'가 아니라 '감히 내가 어떻게 엄마 앞에서 요리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블루오션(!)을 찾았다. 엄마의 요리는 대부분 한식이니까 서양식 요리나 베이킹 같은 건 내가 엄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샐러드나 파스타를 만들고 빵과 쿠키를 굽는 일은 나의 몫이 되었다. 가끔은 이미 잔뜩 수확해 논 채소를 먹기 위해 새로운 레시피를 찾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이미 엄마의 한식 레시피로는 먹을 만큼 먹은 상태었기 때문에 새로운 요리가 필요했다. 이럴 때 내가 나서는 것이다. 이덕에 우리 가족의 레시피가 한식, 양식할 것 없이 풍부해졌다.
다만 엄마나 나나 무언가를 계량해 가며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를 수치화해서 알려주는 것이 잘 전달될지 모르겠다. 이제 첫 시작이니 부족한 부분은 채워 나가는 거지 뭐.
자, 그럼 이제 첫 요리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