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동물원

by 김희진
동물원.JPG 언젠가의 아메리칸 테이퍼


언젠가부터 동물원이 서글프다.

게다가 겨울, 평일 오전의 동물원이라니, 이것은 대놓고 울음을 강요하는 듯한 영화 마냥 뻔하다. '왜 슬픈가?'에 대한 답이 명확한 한 마디로 딱 정리되진 않지만, 아마도 그간 체감하지 못했던 세월의 민 낯을 마주하는 기분이 드는 탓이 가장 큰 듯싶다. 어릴 적 젊었던 부모님과 이 곳을 찾았던 기억, 그때의 북적임과 반짝임, 어리던 나의 얼굴 같은 지나간 것들이 떠오른다. 자연스레 부모님과 동물원에 오지 않게 되며 잊고 지내던 것들이 훅하고 몰려온다. 동물원도, 나도, 나이를 먹었다.


친구와 삼천 원짜리 입장권을 더치페이로 끊고 동물원에 들어선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구 주변 벤치에 모여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이다.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인 동물원에 동물을 볼 의지는 그다지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들이 가득 앉았다.


이것 봐, 동물원은 벌써부터 서글프다.

유인원 관부터 슬슬 돌아보려는데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온다. 생애 만난 고양이 중 가장 사교성이 좋은 놈이다. 저런 성격이라면 거리에 살아도 굶진 않겠다 싶다. 고양이조차 지 밥벌이를 한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동물을 무서워하는 촌스러운 여자이기에 은근슬쩍 한 발짝 물러선다. 이건 싫은 것이 아니 라무 서운 것이다. 최근에야 많이 좋아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골목에서 개나 고양이를 마주치면 뒷걸음을 쳐 다른 길로 돌아갈 정도였다. 뒷덜미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오면 개가 오나 싶어 공포심에 소름부터 쫙 돋기도 했다. 심지어 어릴 적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개 목줄이 풀려 있는 날에는 내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 정도니말 다했다. 공포는 근원이 없었다. 그냥 무서웠고, 사실 나는 여전히 동물을 두려워한다. 사람을 포함해서…


좁은 원두막 지붕 아래 설치된 온열 기구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원숭이 군단은 한 번씩 우두머리가 화를 낼 때마다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보기에도 체구가 작아 보이는 한 놈은 무리가 흩어질 때마다 두 손을 배 위에 공손히 모으고 눈으로는 계속해서 우두머리 눈치를 보며 다시 따뜻한 곳을 찾는다. 그 눈빛과 몸짓에서 묻어나는 단체생활의 노련함이 어찌나 측은하던지, 더는 보기 힘들어 걸음을 옮긴다. 여기저기를 배회해 보지만 날이 추워 밖에 나와있는 동물들이 많지 않다. 동물을 보러 온 사람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그 와중에 낙타 한 마리가 야외 우리 안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낙타는 원래 더운 나라에 살던 동물이 아니던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잠시 담배 한 대 피러 나온 회사원 같기도 하다.


이제 갇힌 동물들이 신기하기보다 그들이 얼마나 슬플까를 생각하게 된다.
제 멋대로 나를 대입하며 나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온열 기구 앞에 널브러져 있던 아메리칸 테이퍼를 보았을 때는, 방구석에서 선풍기 모양의 난로를 켜 두고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해서 흠칫 놀라고 말았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 아메리칸 테이퍼, 아마 이 우리를 돌아서면 아메리칸 어쩌고 정도로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웅크리고 있던 탓에 제대로 보지 못한 그의 얼굴 또한 코알라를 닮은, 혹은 개미핥기를 닮은 어떤 것으로만 기억될 뿐 그 자체의 흐린 정체성은 깊게 각인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머리 대신 스마트폰이 모든 것을 기억하니까, 아널드 슈워제네거, 파트리크 쥐스킨트 같은 외국 사람들의 긴 이름을 외우던 총기를 잃어간다.


1월의 동물원은 이래저래 서글프다. 동물원이 서글픈지, 내가 서글픈지는 모르겠지만, 문이 닫힌 매점 앞에 그려진 색이 다 빠진 뽀로로를 볼 때처럼 어딘가 기운이 빠진다. 괴이하게 만들어진 공룡 조형물, 네 발이 시멘트에 갇힌 모양으로 제작된 치타 동상을 볼 때의 당혹스러움처럼 웃기고 슬프다. 그곳엔 빛나던 순간의 아련함이 있고, 게으른 나 자신의 투영이 있고, 갇힌 존재에 대한 연민이 있다.


동물원이 이토록 서글픈 것을 보니, 내가 서글픈 어른이 되었나 보다.








- 지난 1월, 올 한 해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동물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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