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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Jun 15. 2019

그런 날이 있다

오늘만 해도 몇 번인가 버스를 탔는데, 계속해서 햇볕이 드는 자리였다. 습관적으로 선택하는 왼쪽 라인이 아무래도 운이 따르지 않았지만 그 불운을 자꾸 까먹었다.

겨우 실수를 떠올리고 오른쪽에 앉았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나에게 익숙한 게 운과 거리가 먼가 봐, 그런 비관적 생각이 뻗어 나게 그냥 두었다.

건너편에 자리가 났을 때 얼른 옮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유난 떨 필요가 있을까'싶은 귀찮음과

'자꾸 왔다 갔다 한다고 싫어하려나' 싶은

눈치 주는 이도 없는데 눈치 보는 마음이 들어

'앞으로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라는 자기 합리화로 자리를 지켰다.


버스에서 내릴 즈음이 되니

내내 맑았던 하늘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늘은 아무래도 이런 날이다.

생각해보니 벌써 6월.

올해 해야 할 일을 아직 정리하지도 못했는데

작년 12월의 여행기를 아직 마무리 짓지도 못했는데

기분과 상황은 벌써 다른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첫 단추를 아직 끼지 못했다.

"끼어야지"하고 생각한 게 벌써 6개월 하고 15일.

해야지, 하는 마음만으로는 1cm도 아가지 못한다.

그 사이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마감을 지켜야 하는 나의 루틴은

한 칸씩 밀리고 어긋나서

해가 중천에 떠야 눈을 뜨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첫 끼를 챙기고, 마감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로 시작하는 메일을 보내고, 그러는 새 해가 지고 한 발짝도 밖으로 내딛지 못한 또 하루가 가고


내가 나를 먹히고 입히고 재우는 이 지루하고 만족도 낮은 루틴을

성실하게 해낼 깜냥과 올바름은 애초에 갖추지 못한 것인지


내일은 지구에 큰일이 났으면 좋겠어, 그러면 만 엉망인 게 아닐테니...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만 하는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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