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두 명의 조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를 보고 있자면 매번 놀랍다.
물론 키우는 입장의 디테일한 고생은 잘 모르는 제삼자의 입장이지만
아이가 태어나 기어 다니고, 걷고, 말하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일련의 과정은 참 빠르기만 하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그 아이가 무려 노래를 부르게 될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두 발로 걷게 된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이 나아졌나.
어느 나이에, 얼마만큼의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 있을까.
2살 때쯤엔 엄마 아빠를 불러주고
3살 때는 화장실을 갈 줄 알게 되고
5살에는 혼자 잘 수 있게 되고
8살이 돼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한글을 깨치려 하고
9살엔 방과 후에까지 남아서 구구단을 외우고
13살에는 집합을 배우고
15살에는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세계명작선을 읽으며
19살에는 수능 생각만을 했다.
뭐 이 정도는 사실할만한 일들이었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이어서 나도 한 것뿐이니까.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부턴 남들과 내가 하는 일이 영 비슷하게 가질 않는다.
내가 이상해 진 건지, 세상이 이상해 진 건지
대세를 따르는 건 더 이상 녹록지 않고,
대세란 것이 뭔지도 더 이상 모르겠고,
내 나이엔 난 이제 뭘 얼마큼 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알기도 싫다.
어느 나이에 얼마만큼의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 있을까.
그래도 19세 이하 때의 일들은 할 만했었다.
19살 때까지는 조금씩 나아지는, 혹은 무언가를 습득하는 삶을 살았던 것도 같다.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은 부지런히 도 흘러가는데,
나는 참 잘도 머물러 있다.
혹은 머무르기조차 힘들어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