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 said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MBC 아카데미 드라마 작가 반에 다녔었다. 그리고 작가 반에 다니던 중에 한 사극 드라마의 막내 작가로 뽑혀서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같은 반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또 유일하게 일을 얻게 되었으니, 그 때는 핑크빛 미래가 곧바로 펼쳐지며 당장 드라마 한 편 쓰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반년 후 즘 나도, 스승님도 곧바로 깨달았다. 내가 너무 무지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고난의 6개월을 보낸 후 합의하에 막내 작가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렇게 여의도의 작업실을 나서던 날, 원효대교를 걸어서 건너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일하며 처음 쓴맛을 맛보았던 날, 그 이후로 십 년 가까이 계속해서 비슷비슷한 씁쓸함이 이어질지는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그 원효대교 위에서 어찌나 슬프던지 한강을 내려다보면서 정말 펑펑 울었었다. 일단 하면 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배운 날이자, 동시에
기회를 얻기보다 어려운 것은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임을 깨달은 날이었다.
아름 said
신입 Product Manager시절, 내가 맡은 상품은 가격 체계가 하나였다. 신상품을 기획한 선배가 단일 요금제로 만들고 퇴사했다. 영업대표 선배가 전화해서 왜 여러가지 케이스의 요금표가 없는지 화를 냈다. 업데이트 하겠다고 하니 그걸 내가 말해야 하는 거냐고 비아냥거렸다. 그 사람의 요구사항을 말하고 나서 뒷부분은 그냥 분풀이였다. 짜증을 만만한 신입한테 푼 거다. 얘기를 듣다가 문득 나는 너무 서러워졌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자리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는데, 상사가 보고 놀라서 누구냐고 다그쳤다. 계속 괜찮다고 하자, 상사는 전화를 빼앗고 누구냐고 묻고, 사원한테 그러는 게 어디 있냐고 훈계를 해주셨다. 선배가 너무 고마웠지만 회사에서 무슨 꼴인가 창피했고, 다시는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억울하면 운다.
이런 점이 참 부끄럽다.
** 독립출판물 <나는 네가 부럽다>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