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 said
차라리 정해진 시험이나 고시가 있는 직업군이라면 편하지 않았을까.
물론 드라마 작가 공모전이나 신춘문예가 매년 열리긴 하지만, 이는 시험 범위와 기간이 끝도 한도 없는 셈이니 말이다. 애초에 그럴 수 없는 직종인 걸 알면서도 가끔은 딱 떨어지는 암기 과목이나 수학 공식처럼 아예 맹목적으로 준비해서 합격 탈락 여부를 가늠할 수 있었다면 조금 편했으려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볼 때도 있다. 결국 싫은 것은 ‘글’이 아니라 ‘의지가 약한 나’이다.
창작의 영역이라는 것이 온전히 혼자서 해야 하는 작업, 누구의 강요도 없이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맺어야 하는 작업인 만큼, 마음만 있고 결과는 없기 십상이다. 내가 나를 고취시키며 자극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절실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끊임없이 쓰는 일을 사실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진정한 작가라고 하기엔 머쓱한 이유이기도 하고.
아름 said
일은 좋을 수 없다.
심지어 그 좋아하는 글쓰기도 본격적으로 시작하니까 벌써 숙제 같다니. 뭐든지 강제성을 띠면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거기다가 나는 또 유독 귀찮아 하는 성격이다. 어릴 때는 친구에게 숨쉬기가 귀찮다고 했단다. 그런 내가 150명의 문의를 받다 보니 귀찮기는 하다. 그래도 전 부서에서 단순 응대가 아니라, 날이 선 항의에 대응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그리고 여러 요청자가 동시에 즉시 납기로 일을 요청하면 정신이 없다. 대규모 조직이라서 보고를 위한 보고, 관리를 위한 관리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도 하고, 혼이 빠지는 날도 있다. 그래도 전 부서에서 답 없는 기획안을 붙잡고 며칠째 끙끙대던 것보다는 나으니, 웬만해서는 만족하고 지낸다. 다만 회사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싫은 일도 티 내지 말고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거다. 단체 생활은 보통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 독립출판물 <나는 네가 부럽다>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