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자주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보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밝히는 일에 몰두했다.
나의 성과에는 이유가 있고, 타인의 성과에는 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너무 쉽게 말해버렸다.
나의 사정은 한없이 가여웠고, 타인의 사정은 한없이 뻔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더 잘할 생각보다, 네가 덜 잘해서 비슷해 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모두의 하향평준화를 꿈꿨다.
그러니까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보았을 때,
나는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해야 좋은 사람일 것 같아서
일단 말은 그렇게 하는 쪽이었다.
남이 보는 앞에서만 그럴듯하게 구는
선택적 긍정주의자인 셈이었다.
"그래도 너는..."
오늘도 이 말을 뱉어 버렸다.
그래도 너는 어리기라도 하지.
그래도 너는 날씬하기로 하지.
그래도 너는 결혼이라도 했지.
그래도 너는 직장이라도 확실하지.
그래도 너는 돈이라도 잘 벌지.
"그런데 나는..."
그래서 나는
무슨 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는
자기 비하 투성의 푸념들을 쏟아내며
그렇게 나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그러므로 너는 훌륭해."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핑계를 대고 싶었을 뿐이겠지.
나의 결핍은 내 탓이 거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
너의 풍요는 네 노력에 비해 과하게 얻은 어쩌다 걸린 운.
결국 그 못난 불만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뱉는 순간 나 혼자만 공허해지는
그놈의 남의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