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수련회에 가면, 이 반에서 제일 키 큰 사람, 뚱뚱한 사람, 콧구멍이 큰 사람이 앞에 나와서 춤추는 시간이 있었다. 제일 키도 크고 뚱뚱하기도 하고 어쩌면 콧구멍도 컸지만 무대 위에 오르기는 죽어도 싫었던 나는 언제나 공포에 떨며 제발 내 손을 잡아당기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한 순간도 웃기지 않았던 이상한 유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중간과정 없이 바로 촛불의식이 시작되었다.
라이브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가 울려퍼지면, 방금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활기차던 레크리에이션 선생님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톤을 바꾸고 부모님 생각을 종용했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속으로 피식 대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순식간에 친구들은 눈물 콧물을 쏙 빼는 중이어서 당황스러웠는데,
그 풍경이 마치 무슨 광신도 집단 같아서 슬쩍 두렵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촛농을 떨어뜨리며 장난을 치다가 나도 좀 울어서 친구의 위로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나는 우는 데 재능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태어나는 순간조차 울음을 터트리지 않아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아이였다. (지금도 나는 내가 이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울음이 없는 점잖은 신생아였다고 주장한다.)
엄마 아빠는 정말 맛있는 거 같이 먹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즐거워했던 좋고 즐거운 기억들만 함께한 사람들이었는데, 도대체 왜 눈물이 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나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엄마, 아빠란 단어만 들으면,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생겼다. 생겨 버렸다.
이건 효심은 확실히 아니다. 딱히 규정하기엔 매우 복잡한데 같은 인간으로서의 의리나 측은지심 같은 감정에 가깝다고나 할까.
'부모님'이란 소재를 눈물 버튼처럼 여기고
울게 하고 싶을 때마다 뻔하게 그걸 누르는 모든 문화 콘텐츠 및 사람들을 별로라 여겼었는데, 이제 내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지나치게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감정.
성인이 된 이후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 왔지만, 그 과정을 통해 깨달은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서로의 삶에 침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정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젠 부모님 없는 삶을 맞이해야한다는 상상이 구체화되고,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울보가 되어버린다.
'엄마 아빠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문장을 떠올리면 나는 점잖지 못하게 잘 우는 어른이 되어 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