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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마음 Apr 04. 2020

배만 채우면 된 걸까? (3)

몇 년간 알뜰히 모은 돈으로 고방이나 다름없는 원룸에서 주방과 방 사이에 문이 있는 분리형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그저 문 하나만으로 분리된 공간이 생겼을 뿐인데 되려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집은 역시 편히 쉴 수 있어야 집이지. 나만의 동굴. 나만의 안식처. 그리고 앞으로 음식 냄새 밸 일도 좀 줄어들겠단 생각에 안심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과 달리 어머니는 새로 이사한 서울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내가 박은 못은 꽤나 깊고 큰 못이었다. 아무리 못을 뺀다한들 그 상흔이 어디가랴...


어머니는 손수 요리하시는 대신 마트에서 파는 조리된 음식을 사 오시거나, 오래 끓이거나 구울 필요 없는 음식들로만 요리해주셨다. 

자식이 무슨 상전이라고...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한동안 마음이 쓰라렸으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자 또 무뎌졌다. 예전 같았으면 꽉꽉 채워졌을 나의 냉장고는 이제 텅 비었고 더 이상 냉동고에 소분되어 얼려진 국은 없었다.




새 집으로 이사한 이후, 나는 회사에서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보다 연차가 꽤 많은 경력직 직원들이 많았음에도 그들 대신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 연이어 차출됐다. 팀장은 믿고 맡길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식으로 치켜세워줬다. 그 사람의 모든 말이 거짓이라고 믿고 싶진 않지만, 실상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까다로운 일을 군말 없이 해줄 팀원이 필요했다. 한 프로젝트는 1년 정도는 주말도 없이 야근을 각오해야 할 만큼 업무량도 많은 데다(크리스마스에도 불려 나와 일을 했다.) 공공기관과 연계된 프로젝트라서 실수가 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나라도 실수 잦은 직원한테는 맡기기 싫지...'


회사에서 나는 좋게 말하면 실수 없이 꼼꼼하게 일 잘하는 직원이었다. 사실은 고분고분하게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이라 이리저리 사용하기 너무 편한 부품이었다. 

나를 스스로 돌보지 않은 대가는 가혹했다. 10년이 넘는 소모품 생활 끝에 결국 나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 나름의 보람과 사명감으로 일했지만 혼자서 끙끙 앓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미련하게도 마지막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나를 내던지며 일했다. 병가를 내야 할 지경이 되어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병가 기간은 나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길어졌다.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너무 무책임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나를 돌보려고 해도 내가 움직여야 돌볼 수 있는 건데. 혼자 사는 나에게는 대신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다.


숨 쉬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역이었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몇 날 며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 울다 지쳐 겨우 잠들거나 다음날 아침에 눈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겨우 잠이 들곤 했다. 병가를 낸 1년 반 동안 눈 뜨기 싫은 날들이 이어졌다.


이런 몸 상태로 복직이 가능할까? 퇴사를 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끝났구나.

오만가지 악담을 스스로 퍼부으며 다 내가 어리석고 미련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자책했다. 올라갈 길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계속해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바닥이 어딘지도 모르게 깊숙이 떨어지기만 하는데 대체 언제쯤 바닥에 닿아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너무 쉽게 말한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밥은 말 그대로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이 까끌거려 당최 뭐를 입안에 넣을 수가 없었다.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도는 말. 왜 살아야 하지... 




1년 반의 병가를 어머니는 모르셨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본디 타고난 성격과 집안 분위기 탓에 현재 나의 상황을 말하는 건 듣는 상대에게 부담만 주고 폐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했다. 


각자의 고통은 각자가 견뎌내야지. 버티자.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받으며 묵묵히 버텼다. 

어렸을 때부터 속상한 일이 있어도 혼자 속으로 삭혔던지라 힘들어도 내색 없이 버티기만 했다. 나쁜 버릇이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지도 모르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신의 딸이 지금 많이 아프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리는 게 나았던 걸까 싶기도 하지만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도 당신만의 버거운 인생의 짐이 있으실 텐데 굳이 더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병가를 낸 기간에 어머니는 서울 집을 몇 번이나 방문하셨지만 오실 때마다 나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냈다며 둘러댔다. 온종일 딸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있는 좋은 회사에 다닌다며 회사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으셨다.

해맑게 웃으시는 어머니의 미소를 굳이 해칠 필요가 있을까.

가뜩이나 서울에서 혼자 사는 딸이라 걱정이 많으신데 차마 당신의 딸이 몸도 마음도 좋지 않다고 말할 순 없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 버리자 나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내 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바짝 서있는 게 느껴질 정도의 예민함이 나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지만 식탁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정답게 밥을 먹는 드라마 속 장면은 없었다. 휴가기간 동안 그냥 쉬고 싶다고만 말씀드리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러려고 이사를 한 건 아니었는데... 


모처럼의 휴가인 딸과의 나들이를 기대하셨을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어머니는 그저 쉬라고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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