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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형균 Dec 23. 2021

헤어지자는 말의 의미 v2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v2

조금 전 '헤어지자는 말의 의미'란 페친의 포스팅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나 : 예과 때 읽었던 한수산의 에세이에 그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정말 헤어지고 싶을 때는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헤어지자는 말은 헤어지기 싫다는 말입니다." 기억으로 재구성한 글이라 원문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모든 헤어지자는 말이 헤어지기 싫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그럴 겁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이유는 상처 받은 걸 되돌려줄 의도 거나 이게 시정이 안 되면 헤어질 수밖에 없으니 헤어지지 않게 잘해달라는 의미겠지요. 회자정리(會者定離)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헤어짐이 이별이 아니듯 거자필반(去者必返) 또한 운명이겠지요.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하겠지요.

내가 지금 헤어지고 싶은 사람은 남이 아니라 나태했던 최근의 나 자신입니다. 헤어지고 성실한 나와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 헤어지고 싶다는 건 헤어지기 싫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 헤어지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 아니길 바랍니다. ^^


페친 : 이미 성실한 나와 함께 살아가시는 건 아니고요? ^^


나 : 한 달 전까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성실(아니 오버)했는데 burn out으로 최근엔 나태한 생활을 했습니다. ^^ 그런 나와 헤어지고 그 전의 성실했던 나와 재회하려 합니다.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태하게 만든 장본인은 나 자신입니다. Pace 조절에 실패해 burn out이 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저에는 지나친 욕심이 있었습니다. 너무 잘하려 애쓴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지나친 기대로 무리한 짐을 지우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려 합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나 자신이므로 누구보다 잘해주고 잘 지내야겠지요.


페친 : 번 아웃의 좋은 점은 뭘까요?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늘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늘 열심히 사는 게 좋은 것인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나 : '오(誤) 노력'이란 책도 있듯이 잘못된 노력은 아니함만 못할 수도 있겠지요. Burn out은 내가 충분히 즐기지 못해서 발생했다고 봅니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즐기고 행복하면 그 결과 재충전이 되는데 에너지를 쓰기만 하고 충전이 되지 않아 생긴 결과입니다. 충분한 휴식으로 충전할 수도 있지만 휴식이 부족해도 일하는 과정 자체가 일이 아니라 놀이이면 그 자체로 충전이 됩니다. 에너지를 무조건 덜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쓰면서도 에너지 회수장치가 동시에 가동이 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모든 운동을 할 때 몸에 힘을 빼고 해야 되듯 일도 힘을 빼고 relax 된 상태에서 즐기며 해야겠습니다.


Burn out의 좋은 점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서 심신에 더 이상의 위해가 발생하지 않게 해주는 warning sign이 되어 줍니다. 과도한 전류가 흐를 때 fuse가 녹아 더 이상의 전류가 흐르지 않게 해주는 안전장치겠지요. 현재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reset 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점이 있겠지요.


그런데 기말고사 답안지 작성하고 있는 기분인데요. ^^


답안 수정합니다.

과거의 성실(?)하다고 생각했던 나와 재회하는 게 아니라 그도 떠나보내고 새로운 나를 만나려 합니다. 내게 지나친 기대로 힘에 부치는 짐을 지우는 나도 아니고 burn out으로 무기력한 나도 아닌 힘을 써야 할 때 적절한 정도로만 힘을 쓰는 smart 한 나를 만나려 합니다. 과도한 기대로 힘들게 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무기력해서 나를 방치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지요. 내가 진짜 뭘 원하지를 알고 필요할 때 필요한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날 만날 자격이 있겠지요. 잠도 제 때 충분히 재워주고 배고프기 전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적절히 휴식도 하게 해 주고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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