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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형균 Apr 09. 2023

흉부외과 지망 고민

어디로 가야 할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의사, 의대생 대나무숲'에 다음과 같은 고민 글이 올라왔다.

'14929번 차트  / 학교

본 4 PK입니다. 요즘 소아과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저도 질문 하나 올려봅니다. 저는 예전부터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어릴 적 의학드라마를 많이 봐서인지 흉부외과 의사가 너무 되고 싶더라고요. 물론 의대 들어와서 선배들이 바이탈은 하지 말라고 하고, 또 PK 돌면서 CS선생님들을 보니 너무 힘들고, 전공의가 많이 없는 걸 보면서 '아 이건 진짜 아닌가...' 싶었어요. 국시 공부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많은데 우선 친한 CS선생님이 없고, 애초에 CS선생님이 많이 없습니다. 혹시 CS 가면 많이 힘들까요? 떼돈을 벌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부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힘든 건 알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휴일은 있으면 저는 만족할 것 같습니다. 성별은 남성이고 의전 출신이라 나이가 조금 있는 편이고 군대는 해결됐습니다. 진지하게 고민상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댓글을 달았다.

Q1. '혹시 CS 가면 많이 힘들까요?'

A1. 난 ENT라 CS를 해보진 않았지만 당연히 힘들 겁니다. 힘드니까 사람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CS가 힘이 들고 안 들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말 CS가 하고 싶으면 힘든 거 생각 안 하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CS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지 않은 겁니다. 이 질문한 자체가 가장 poor prognostic factor라고 나는 봅니다.

Q2. '떼돈을 벌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부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A2. 역시 내가 CS가 아니라서 수입이 얼마인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무슨 과를 하든 떼돈 벌기는 어려울 것 같고, 무슨 과를 하든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부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입니다. '부족'이란 건 대단히 주관적입니다. 한 달에 몇 백만 원을 벌어도 부족하지 않을 수 있고, 한 달에 몇 억 원을 벌어도 부족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의대동기회를 갔더니 친구 하나가 하는 말이 "많이 벌어다줘도 안에서 워낙 많이 써대니.."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남자의 성공은 여자가 쓰는 돈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이란 말을 신문기사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

Q3. '힘든 건 알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휴일은 있으면 저는 만족할 것 같습니다.'

A3. 이건 내가 CS가 아니라서 정말 답하기 어렵네요. 레지던트 특히 저연차 때는 CS가 아니라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을 테고 전문의가 되고 나면 나을 수 있겠지만 병원 규모나 인력구성에 따라 다를 수 있겠네요.

이 3가지 조건에 맞아야 지원할 수 있다면 이 것 말고 다른 이유로도 그만둘 수도 있을 테고, 이 3가지 조건이 하나도 만족되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다면 다른 악조건을 만나도 끝까지 해낼 수 있고 후회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요즘 같은 세태에 이런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고무적이고 칭찬할만합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걸 하세요."입니다.
내 얘기를 하면, 난 본 3 때 정신과를 하고 싶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이신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로 포기하고, 본 4 때 피부과를 지망했지만 역시 아버지의 반대로 포기했습니다. 그 당시 비인기과이고 수입도 적은 게 반대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둘 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인기과인데 우리나라도 10년, 늦어도 20년 후에는 인기과가 되고 수입도 많아질 거라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산부인과를 하겠다고 하면 반대를 안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더 강하게 반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요즘 소위 바이탈과 하시는 선생님들이 말리는 이유와 같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되었고, 교수를 하고 싶었지만 ENT 수술은 내가 그다지 선호하는 수술이 아니어서 교수로 오라는 곳도 많았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주로 서울 등 전국의 공립중학교와 교육청에 진로 강사로 자주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중학생들이 강의 후 자주 한 질문이 "어느 과가 인기과이고 돈을 잘 버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난 "Do what you love, the money will follow."란 책 제목을 거명했습니다. 또한 지금 중천에 떠 있는 해는 지기 시작하고, 새벽에 뜨기 전의 해는 곧 떠서 오래 밝게 빛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게 이치라서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게 마련입니다. 내가 학생 때 비인기과였던 정신과와 피부과는 지금 인기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비인기과가 나중에 인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변하는 인기과와 비인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잘 변하지 않는 자신의 관심과 적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흉부외과는 미국에선 인기과인 걸로 압니다. 물론 우리나라와 의료보험 및 수가가 다른 등 의료환경이 달라서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미래를 예측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건 변한다."는 사실뿐입니다. 정 한국의 의료환경이 변하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흉부외과를 하기가 어려우면 미국에서 CS를 해도 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흉부외과를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겠지요. 여기서 가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의사로서의 쓸모입니다. 한국에선 희소가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블루오션(Blue Ocean)이라 볼 수 있습니다.


평생 일할 전공을 선택하는 건 평생을 같이 할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지금 이 문제는 '사랑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결혼 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대'와, '사랑하진 않지만 현실적 측면에서는 유리한 상대' 중 누굴 선택하느냐는 문제와 비슷합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택한다면 '사랑은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므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얘기도 귀담아듣지 말고 바이탈과 하지 말라는 선생님들의 얘기도 귀담아듣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랍니다. 남에게 묻지 말고 자신의 Best Self에게 묻기 바랍니다.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Follow Your Heart!"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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