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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의 빛글 Jun 22. 2021

삶은 아이를 낳는 진통보다 심하다

묵은 감정을 떼내라

삶은 아이를 낳는 진통보다 더 심할 때가 있다. 


72시간의 진통 끝에 큰 아이를 낳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냥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했다. 자궁입구에 큰 아이의 머리가 끼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더 이상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제발 나를 죽여달라고, 그냥 이대로 죽겠다고 의사에게 간청했다. 쫌만 더 힘을 줘보라는데, 이미 젖먹은 힘까지 다 쏟아내서 어떻게 힘을 줘야하는 건지도 잊었다. 아이의 머리가 1/3정도 끼인 상태로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지만, 아이는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조금의 지연도 없이 의사가 하자는대로 했다. 자연분만 하려고 애쓴 흔적은 온데 간데 없다. 속상하다. 외계인도 아이고 아이의 머리는 삐쭉.....     

 

인생이란 것도 그렇다. 있는 힘을 다해서 용케 살아가 보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것 같다.

 누군가가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말할 힘도 없다. 내 안에 버틸 힘이 없다. 손을 뻗을 만한 곳도 손을 뻗어 줄 누구도 없을 땐, 정말 죽고 싶은 마음 뿐이다. 

차라리 그 때처럼 흡입기라도 사용해 보자고 한 의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 때만 견디면 또 살아갈텐데 말이지. 견뎌 낼 수 있는 힘을 조금만이라도 보태주면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텐데....


아이러니하게 삶의 기적이란,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길게 가져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찾으려고 애쓴다. 

절망의 늪에 허우적댈지라도 순간 순간 희망을 찾는다. 그런 기적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만약, 감정을 보는 연습을 많이 한다면 탄력은 더더욱 세게 튀어오를 것이다. 


배우가 역을 맡게 되면 진정한 연기를 하기 위해 극 속의 인물이 되려고 무진 연습한다. 극 중 캐릭터가 평소의 배우의 내면과 성격이 일치하면 극 중 인물을 더 잘 소화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도 진짜 자신처럼 연기하기 위해 평생을 연습하는 것이 아닐까? 


감정이란 것은 아주 어릴 때 저축되어진 것이다. 

과거의 나의 감정은 내가 원해서 쌓아진 것이 아니다. 어릴 적 원치 않은 감정의 자극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깊숙이 숨어 있다가 원치 않을 때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만든 감정이 아닌데, 그 감정에 놀아난다. 감정도 다시 써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쓰여졌다면 이제 그것을 탐색하고 내가 원하는 감정으로 다시 써가야 한다. 그게 진짜 내 감정이다. 내가 주도하고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의 지도를 그려야 한다. 


우리는 생각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인간은 본능이 이성보다 더 빠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는 더더욱 그렇다.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거나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싸였을 때는 신체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에 본능이 먼저 움직이다. 

감정은 본능에 해당된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본능의 감정을 이해해야만 진짜 탁월성을 가질 수가 있다.  


하루에 한번쯤이라도 가족이 해줄 수 있는 건 포근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감정 뿐이다. 

그런 가족조차도 나에겐 사치였다. 

죽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 오늘 삶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런 불행감성에 젖은 아이었다. 그렇게 나를 에워싼 두꺼운 껍질과 껍질을 까도 단단한 돌덩이처럼 저장된 감정의 어그러짐을 찾아 깨뜨리지 않으면 나는 성장할 수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 과거의 나처럼 그런 고된 길을 지금도 걷고 있다면, 

그 감정에 아직도 휘둘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좀 더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하고, 또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고,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과 끈기 있게 싸우도록 자극과 위로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진 당신이 당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따뜻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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