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용서하기로 했다

이상형을 만나다.

by 힐링아지매


살림 밑천 맏딸


“몇 살이세요?”

“몇 살에 결혼했는데 아이가 이렇게 커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 종종 듣는 얘기들이다.

나이에 비해 아이들이 큰 것 같다는 얘기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기도 했고 나이에 비해 동안이기도 하다.(28살에 고등학생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큰댁에 갈 때면 언제나 엄마 없이 아버지와 동생들과만 갔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서 못 오셨다고 말씀드려라’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항상 엄마가 당부하신 말씀이다.

우리 삼 남매가 엄마도 없이 가면서 집안 어른들에게 혹시 책이라도 잡히지 않을까 걱정하시며 어른들에게 해야 할 인사는 물론이고 어렵고 힘든 살림에도 옷이며 신발이며 언제나 정갈하고 깔끔하게 입혀서 보내셨다.


일 년 중 설날, 추석 명절은 최고의 새 옷을 입는 날이다.

(평소에도 분명히 새 옷을 사주셨겠지만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새 옷을 입는 날은 날아갈 듯 좋으면서도 언제나 조심스럽고 그만큼 부담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특히 더 그랬다.

한 번은 멀미로 다 토하는 바람에 새 옷을 버리고 속이 상해서 하루 종일 부은 얼굴로 다녔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신경을 쓰고 무엇이든지 잘하고 싶어 했고 아버지는 당신 주관대로 뭐든지 거침없었고 항상 당신의 말과 선택은 정답이라는 분이었다. 그러니 두 분은 자주 다툴 수밖에 없었고 런 아버지는 타인과의 소통도 힘들었다. 독단적이고 엘리트 의식이 두드러지는 아버지의 모난 모습을 엄마는 특유의 센스와 지혜로움으로 부드럽게 만들었었다.

아버지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전부 엄마에게 쏟아내고 스스로 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엄마는 그렇게 안에서,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항상 긴감과 두통과 소화불량을 달고 지내셨다.


중학교 2학년 때 결국 엄마는 B형 간염 진단을 받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당신의 지병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엄마는 병원 출입이 더 잦아지셨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부터는 수시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살림 밑천인 첫 딸로서 엄마 간호는 물론이고 혼자 벌이로 세 아이들 학비며 엄마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3 여름 방학부터 취업을 하며 실습비며 작은 월급은 모두 엄마의 병원비로 보탰다.

학기를 채 마치기 전부터 이른 취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입, 퇴원을 반복하시는 마로 인해 나도 입, 퇴사가 반복되면서 안정적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형을 만났다.


21살 늦은 가을 여고 동창을 통해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엄마 병간호면서 살림도 하고 직장도 다니는 와중에 어떻게 남자 만날 생각까지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그를 만났다.


친구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그는 키가 크고 날씬했다.

(그때는 야윈 모습이 날씬하다고 여겨졌다)

하얀 피부와 언제나 웃고 있는 얼굴, 웃을 때마다 살짝 보이는 윗 송곳니가 매력적으로 보이다니...

그 매력으로 호감이 가는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첫 남자이고 첫사랑인 그가 나의 이상형이 되었다.

당시 나의 이상형은 탤런트‘백일섭’씨 같이 듬직하고 호탕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날씬이 었고 술도 마실 줄 모르고 말수도 적었 묻는 말에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하고 나의 조잘거림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갓 씌우고 도포만 입히면 딱, 조선시대의 선비처럼 조용하고 점잖 사람, 나의 이상형과는 정확히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그렇게 나의 이상형이 되었다.

“글마 키도 크고 얼굴이 허옇고 그렇더구먼”


어느 날 아버지는 뜬금없이 말씀을 하고는


“만나봐라, 얼굴이 너무 하얗고 살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해도 사람은 나쁘지 않겠더라”


그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까지 가서 그 사람을 몰래 보고 와서는 교제를 허락하신 거였다.(당시 그는 은행에 근무해서 아버지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둘의 교제를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통금시간은 여전히 9시였고 우리 둘은 퇴근 후 2시간 남짓 같이 있었고 휴일은 밀린 집안 살림을 해야 했기에 휴일 데이트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둘만의 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1여 년간 연애를 하는 동안 둘이서 찍은 사진이 10장도 되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은 1년 동안 어떤 연애를 하고 무슨 마음으로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22살 겨울, 나는 나의 이상형과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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