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용서하기로 했다

여보, 잘가요.

by 힐링아지매


“고함지르는 아버지가 없어서 좋아요”


아버지의 등받이가 없어지고 휑한 안방을 빙빙 돌면서 뛰어다니는 작은 아들 항상 엄마 옆을 지켜주는 큰아들, 이제 두 아이들에게는 엄마만 있고 내게는 어린 두 아들이 있다.




“곰국을 끓였는데 는 계에 가야 해서 갖다 줄 시간이 안 돼서... 아비 보고 와서 먹고 가라 해라 ”


오랜만에 전화하시는 어머니 말씀은 당신이 곰국을 끓였는데 양이 적어서 손주 들과 며느리 몫까지는 안되 항암을 하고 있는 아들은 먹이고 싶으니 혼자 와서 먹고 가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도대체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고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일까 몹시 궁금하다. 남편이 어릴 적에 젖배를 곯아서 야위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는데... 곰국을 끓였으면 당신이 직접 들고 아들을 보러 오시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항암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들을 부탁하게 위해 시댁 가까이로 왔지만 어머니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으셨다. 매번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았고 거짓말처럼 10개월 동안 어머니는 한 번도 아들을 보러 오시지 않았다. 그러니 아들의 상태를 아실 턱이 없다.


남편 얼굴에서 선한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다. 덩달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끊기고 가끔 '나가'라는 날카로운 고함소리만 들린다.

항암이 끝나면서 직장에 복귀를 하고 오전 근무만으로 배려를 받았지만 이제 그것마저도 못하게 되었다.


새로운 통증이 시작되면서 그간의 모든 루틴이 무너졌고 수시로 괴롭히는 고통을 잊으려고 남편은 아이들 침대에 올라가 앉았다가 내려왔다가 마루를 서성이다가 다시 안방으로 가서 등받이에 기댔다가 금세 아이들 침대로 올라가기를 반복하며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남편,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남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왔다 갔다 서성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흔들의자를 하나 샀다. 남편은 흔들의자에 앉아 계속 흔들어대고 조금씩이라도 먹던 음식마저 이젠 넘기지 못하고 입을 앙다물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도 마시지를 못한다.


아이들은 이제 안방에 얼씬도 못한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 수시로 몇 시냐고 시간을 물어본다. 왜 그렇게 시간을 물어봤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잦아다. 눈앞에 바짝 시계를 들이대며 보여줘도 계속 묻는 남편의 시선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바로 앞에 있는 시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는 말 하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아픔으로 의자를 흔들어 대고 초점 없는 시선은 어디쯤인지 모를 허공을 응시하면서 ‘몇 시고?, 몇 시고?’ 자꾸 시간만 물어본다.


119 구급차를 타고 긴급하게 다시 입원을 했고 통증이 올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힘들어하는 남편, 담당의는 회진도 오지 않는다. 남편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게 된 이유를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떤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줘야 하는데... 통증은 물론 이제 본인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잠시도 혼자 둘 수가 없다.


시동생이 담당의를 만나고 와서는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직접 가서 들어야 한다. 무작정 담당 선생님 연구실 앞에서 기다렸고 드디어 만났고...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하지만 젊은 분이니 이해를 잘하실 것 같아서 돌리지 않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참 뜸을 들이던 사는 절망을 말하고 있다.


“암세포가 척추로 전이되면서 뇌까지 올라간 상태입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집으로 모시고....”


바닥에 들러붙은 발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빨리 남편이 있는 병실로 가서 챙겨야 하는데 다리가 요지부동이다.


아버지,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한테 여쭤보면 이럴 때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잘하는 것인지 말씀해 주실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가 업어서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며 앰뷸런스 침대 앞으로 등을 대시며 결국 울음이 터지신다.


“에고 이 몹쓸 사람아, 네가 아버지를 업어줘야지~”


“에고 불쌍한 사람”


집으로 돌아온 뒤로는 물도 마시지를 못하고 마른 입술을 거즈로 적시는 것이 최선이다. 이제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뇌로 전이가 되면서 아플 때마다 괴성을 지르는 것 말고는 그의 얼굴도 사라졌고 오로지 아픈 감각만 남은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픔으로 괴성을 지를 때마다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이었고 남편의 엉덩이는 주사 바늘 자국으로 계속 퉁퉁 부어있고 이젠 더 이상 바늘을 찌를 곳도 없다.


꼭 잡은 남편의 손에 순간 힘 들어온다.


“응, 여보 뭐? 물 줄까요?”


희미하게 끄덕인다. 내 말을 알아듣고 의사 표시도 하는 남편... 이게 얼마만의 반응인가?

한 숟가락의 물을 입 안으로 넣어주지만 바로 다 흘러내린다. 뭐라고 얼거린다.


"여보, 뭐? 뭐라고?"

다시 물어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렇게 아들이 생의 끈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어머니는 부랴부랴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아들을 찾아왔다.


“아이고 내 종지”


그간 한 번도 오지 않으셨던 어머니를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통곡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짧은 순간, 그 와중에 어머니가 밉다. 그렇게 아끼는 종지라면 자주 와서 아들 손도 잡아주고 아픈 등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주시지, 왜 이제야 울고 불고 하시는지 원망스럽고 그래서 더 밉다.


온몸이 서늘해지면서 갑자기 두려움이 전해온다. 상 남편 옆에서 자다가 그날은 어머니를 가운데 주무시게 했던 다음 날 마루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맥 빠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갔다, 눈을 못 감는다. 네가 와서 감겨 줘라”


오래전부터 초점 잃고 있던 희미한 남편의 두 눈은 내 손이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스르르 감긴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7살 큰 아들은 잠바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아버지의 머리가 있는 관 앞에서 꼼짝 하지 않고, 5살 작은 아들은 천지도 모르고 문 오신 분들 사이로 뛰어다니다가 형 옆에 와서는 '여기 우리 아버지가 있어요' 한다.


그렇게 착하고 선한 미소가 매력이었던 내 남편은 34년의 짧은 삶에서 자신과 똑 닮은 두 아들들을 남겨 두고 훨훨 날아서 멀리 갔다.

함께 한 8년의 흔적을 가슴에 진하게 찍어두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 대신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 버렸다.


손가락 걸며 다짐했던 우리의 희망은 1년도 버티지 못했고 남편을 좁디좁은 한 평의 혼자 뉘어 놓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사랑으로 태어난 붕어빵 두 아들, 우리는 영원히 지켜주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약속은 이제 나 혼자의 몫이다.

두 아이는 사랑이 책임이 되었다.



내 생애 가장 따뜻하며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은 당신과 두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 8년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희미해지지 않는 당신의 미소가 아직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keyword
이전 04화나는 내 삶을 용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