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의미를 떼어버리고 안아주세요!
마지막으로 누군가 꼭 안아줬던 게 언제였나요?
이 질문과 함께 매 수업마다 인연이 닿은 하나하나 포근하게 안아주면서 수업을 마친다.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된 요즘, 처음 보는 사람도 포근히 안아주는 게 쉬워졌다. 힐링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낯선 누군가를 안아주는 게 편했던 건 절대 아니다. 오늘 그래서 이 얘기를 좀 해보려고.
21살까지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었던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빼고는 가족들이랑 허그를 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다 첫 남자 친구가 생기고,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일까지 시작하면서 친밀한 사이에선 허그가 익숙해졌다.
특히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양 볼을 맞대고 인사하는 비쥬(bisou, baiser)가 익숙해져서 상대적으로 허그가 어렵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경험이 끝이었다면 매 수업마다 안아주는 힐링허그 리추얼을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이런 인사법이 아무리 좋고 익숙해졌어도 그 문화권을 떠나자 그 인사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인사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니까.
실제로 이후 싱가폴에서 지내면서 생각보다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이 다시 드물어졌다. 별생각 없이 지냈다. 인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태국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한 때 즐거웠지만 말년엔 회의감으로 가득했던 싱가폴 회사생활을 깨끗이 접고 딱 1년만 쉬어가자고 다짐했다. 그 해 봄, 태국 콘캔, 아무것도 없는 정글 마을, 마인드풀니스 프로젝트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허그를 새로 배웠다. 누군가를 안아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만지는 건(touching) 말이 필요 없는 소통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만진다/안는다(touching/hugging) 행위에 부여하는 '이 왜곡된 의미'가 서로를 건강하게 연결시키는 걸 방해한다. 흔히 신체적 접촉이라 하면 사람들은 로맨틱한 관계나 성관계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그(hugging)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면서 위로를 하기도, 축하기를 하기도, 응원을 하기도,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 허그라 하면 한쪽으로 치우지는 연관성만 있었다면 오늘 새롭게 건강한 연결고리도 만들어주길.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하다. 마인드풀니스 프로젝트 입소(?) 첫날, 30여 명이 동그랗게 앉자 파운더인 크리스찬이 모두에게 그곳에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룰을 설명해 나갔다.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곳이기에 서로 배려해야 할 사항들이 꽤 많았다. 환경을 위해서도, 사람들을 위해서도.
여기선 거의 눈만 마주치면 서로 안아준다.
고 해도 맞는 말이다. 그때까지 살면서 잘 모르는 사람과 평생 했던 허그의 반절은 이곳에서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니까. 처음엔 나도 '뭐 이렇게까지 유별나게 인사를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게 한 달을 넘게 지내 보고 나니 정말 모든 허그에 이유가 있었다. 특히 혼자 장기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혼자 있는 게 있숙해지면 누군가와 신체 접촉하는 기회가 굉장히 줄어든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살기 힘들어지는 조건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신체 접촉은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채워줘야 하는 기본적 욕구는 먹고, 자고, 싸고, 섹스하는 것 이외에도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를 연결해주는 신체적 접촉, 접촉 위안(connect comfort)이 있다. 신체적 접촉이 생존에 얼마나 중요하지를 증명해주는 실험들도 꽤 있다. 가장 극적인 실험은 바로 194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40명의 갓난아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 실험은 불과 4개월 만에 강제로 중지되었다. 양육자의 신체적 접촉 없이 길러진 실험군의 아기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너무 끔찍한 실험이다 ㅠㅠ
육체적인 접촉을 통해 서로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인간의 필수적인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허그에 인색하다. 왜? 허그에 왜곡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고 주고받기 때문에. 4년 전 태국에서 진정한 허그의 의미를 배운 뒤 나는 주변 사람들을 정말 안아주기 위해 안기 시작했다.
We also need touch for touch sake!
당신도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우리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 쓰다듬는 것 이상 무엇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안아주자. 오늘 저녁 수업에도 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꼭 안아줄거다. 수고했다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