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걷어내고 나면 남겨지는 것
오늘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걷어내고 나면, 도대체 무엇이 남겨질까?
나는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야기들과 함께 살아간다.
사건에 대한 해석, 나에 대한 개념, 삶을 이해하려는 서사들.
그 이야기들이 없으면 나는 누구지?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나는 이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기로 했다.
개념 없이도 살 수 있을까?
해석 없이도 살 수 있을까?
이야기 없이도 살 수 있을까?
생각보다 대답은 단순했다.
산다.
숨 쉬고, 먹고, 걷고, 자고, 느끼고… 다 한다.
말이 없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건 아니듯,
개념이 없다고, 해석이 없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야기를 걷어낼 수 있다.
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오히려 삶을 방해하고 있다면,
잠시 내려놓아 볼 수 있다.
문제는 ‘가능하냐’가 아니라,
‘붙잡고 있는걸 놓아줄 용기가 있느냐’는 거다.
익숙한 해석, 붙잡고 있는 개념, 나를 규정해주는 이야기.
그게 사라지면 공허할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실은, 사라진 그 자리에 무언가가 ‘남겨진다’.
아주 고요한…
그런데도 분명히 살아 있는…
보여지는, 들려지는, 느껴지는, 되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
그건 설명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고,
정의할 수도 없다.
단지 있는 것.
그냥 있음.
그것이 남겨진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는 안다.
내가 이야기로 덧칠되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어떤 본질.
이야기를 걷어내야만 만날 수 있는 나.
말로 포착할 수 없는 나.
그 나를 나는 오늘 조금 느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이야기를 걷어내고 나면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말이 멈춘 그 순간,
해석이 끊긴 그 공간,
개념이 사라진 그 바탕 위에,
나는 그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