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로 살며 잃어버린 나
저는 어쩌다 내면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어린 시절 저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고, 사춘기 때조차 부모님 앞에서는 반항하지 않았죠. 밖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유행하는 옷을 입는 정도였지만, 부모님을 크게 걱정하게 만든 적은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제가 부모님을 걱정하며 자랐습니다. 오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는 부모님께 속을 썩이면 안 된다는 마음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던 거죠. 마음공부를 하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의 반항은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하는데, 저는 그 시기를 제대로 거치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반항적인 기운조차 억눌러버렸으니까요.
늘 주변을 먼저 배려하고, 남을 걱정하며 살다 보니, 정작 제 감정은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누르고 억누른 끝에, 가끔은 분노가 불쑥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20대까지도 저는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적인 코스’를 따르려 애썼습니다. 어릴 적부터 남들이 놓치던 부분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감정과 분위기를 민감하게 캐치했지만, 그런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야”라며 억지로 부정했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집단 안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제 안의 ‘내면아이’를 감옥에 가둔 채, 꺼내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모님께 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이 되려고 애썼습니다. 부모님이 막내인 저를 자랑스러워할 때 비로소 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애 역시 진짜 제 마음을 따라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은 있어 좋은 분을 만났지만, 결혼 얘기가 오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왜 그런지 몰라 괴로웠죠. 평생 내 마음에 귀 기울여본 적이 없으니, 어떤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겁니다.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내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구나.”
억눌린 채 무뎌진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직관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착한 아이로 살아온 저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을 힘들어했고, 이별조차 쉽게 하지 못해 오랫동안 괴로워했습니다. 상대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싶지 않아 결국 이별을 택했지만, 이후에도 저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했습니다.
“너는 왜 네 마음 하나 제대로 몰라서 상처를 주니?”
“네가 잘못한 거야. 넌 나쁜 사람이야.”
이별은 서로에게 아픈 일인데, 저는 제 감정을 돌보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비난했습니다. 결국 괴로운 마음이 몸으로 드러나 얼굴 전체에 두드러기가 퍼졌습니다. 피부과 치료도 듣지 않았고, 한 달 넘게 고생했습니다. 다행히 엄마가 매일 챙겨주신 토마토와 매실 주스를 마시며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지만,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 덕분에 저는 드디어 ‘나를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던 저는 결국.. 제 내면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