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온도가 달라졌다

운동을 배우다, 인생을 배우다

by 역전의기량

항상성? 항정상태?

동쌤과 기분 좋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 생리학 강의를 틀었다. 3월부터 시작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방송통신대 인터넷 강의라 그런가 개강일에 딱 맞춰 시작하지 않아도 되더라. 강의 목차를 보니 생활체육지도사 시험 대비 내용이기도 하고, 듣고 문제 풀고 정리하면 중간·기말고사까지 일석이조로 준비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근데 롤/스/무 6k 여파가 꽤 컸다. 어제 운동도 안 했는데 딥슬립을 했다. 10시 반쯤 잤는데 9시 넘어 일어나니까 거의 10시간을 잔 셈이다.

아침 챙겨 먹으려는데 야근하고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다. 지지고 볶고 보자마자 싸우던 사이였는데, 근래에는 만나면 안 하던 말 한마디씩 건넨다. 이게… 집안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느낌인가.





오늘은 20년 넘게 만난 언니를 잠깐 만나러 가는 길. 예전엔 야간대학 다니며 술 한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술보다 건강을 챙기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한 번 만나면 세 시간이 기본이다. 오늘도 얼마나 입을 털까. ㅎㅎ

“올라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네.”
“응. 예전엔 에스컬레이터가 맞은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찾느라 한참 걸렸어.”
“마케팅 전략을 바꿨나 봐. 에스컬레이터 타기 전에 쇼윈도 상품도 보라고.”





언니랑 합류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주식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는 애 낳고 10년을 주식 공부하며 투자했다며, 마이너스 났던 것도 복구하고 명절에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선물도 드렸다고 했다. 노력의 결과를 본다는 말이 괜히 내가 뭉클했다.


그러다 명절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도 이번 명절엔 큰 결정을 했다. 시댁에서 차례를 계속 지내지 않기로 했다. 한 번에 오케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엔 “돌아가신 날 제사는 지내자” 정도로 정리됐다고. 완벽하진 않아도, 어디까지나 ‘앞으로의 방향’이 정해진 것만으로도 큰 일이다.




내가 결혼할 땐 강남으로 멀리 출근했고, 애 아빠보다 더 벌었자나.
더 벌기 위해 늘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고,
그때의 나는 ‘같은 자리에 머무는 사람’처럼 보이는 남편이 답답했었어.
그래서 엄청 싸웠다.

지금은 입장이 많이 바뀌었지.
내가 아프기도 했고, 남편과 내가 서 있는 자리도 달라졌다.
이제는 그때처럼 돈을 많이 준다 해도, 나는 예전 같은 방식으로는 일하지 않을 것 같진 하지만.

입장이 바뀌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그때의 내 마음도, 남편의 상황도.
예전엔 못 들어줬던 말들이 이제는 조금씩 들리고,
남편이 뭘 해주면 “고맙다”는 말을 꺼내게 됐다





알고 보니 나는 나한테 너무 박했더라.
잘했으면 “잘했다” 한마디 해주면 되는데,
나는 나를 몰아붙이기만 했다.
그래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전부라고 믿었거든.

지금은 무작정 달리기만 하진 않는다.
옆을 보고, 속도를 조절하고, 내려놓을 것도 내려놓는다.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 하나는 내려놔야 집이 굴러가더라.

집안의 온도가 달라지니까
나도, 남편도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언니랑 이야기하다가 나랑 같은 이름의 친구분 이야기가 나왔다.
들어보니 나랑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
나도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집으로 이사가기로 했다.”
이 집을 분양받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유방암 재발 치료 받느라 못 갔었다. 이제는 내가 일을 하고 있고, 회복도 하고 있으니 들어가야 한다. 애도 중학교·고등학교 6년, 제일 중요한 시기인데 이사 다니는 것도 정신없고.

언니가 말하더라.
“그래서 네 얼굴이 좋아졌구나. 사람은 마음이 편해지면 얼굴에서 티나.”

맞는 말이다.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중이면, 앞으로 승승장구만 남은 거 아니냐고. 그런 말이 그냥 응원처럼 들렸다. 예전엔 ‘돈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다르게 느껴졌다. 누굴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내가 바뀌면 주변의 온도도 바뀐다.



언니와 헤어지면서 잠깐 흔들렸다.
언니가 샀다는 종목을 검색해봤다. “지금 들어가도 될까?” 하는 마음이 스쳤는데… 아니다 싶었다. 우리 집은 곧 자금이 필요한 시기고, 묶이면 이사에 지장이 생긴다. 이사는 ‘지금’이고 주식은 ‘나중’이다.

주식은 이사가서 정리 좀 하고, 잃어도 되는 작은 돈으로 다시 시작하자.




언니랑 헤어지고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운동의 주제는 “발바닥 중심 이동”과 “둔근 자극”.

“기량님은 지면반발력을 키우셔야 돼요.
많이 좋아지셨지만 발바닥 중심 이동을 어디에 두고 운동해야 하는지, 인지하는 연습도 길러야 하고요.”

동쌤이 이야기하셨던 부분에 대해 연습하기

워밍업으로 롤/스 2000m.
6k 이후 또 타서 그런가 몸이 무겁진 않았다. 대신 ‘양쪽 균형 유지’를 계속 인지하기.

덤벨 원레그 데드리프트
- 왼쪽은 배꼽 돌리면서 상체 드는 힘으로

굿모닝
- 발바닥 앞쪽 힘 / 힙힌지 접으며 내려가기

킥스탠드 RDL
- 앞발 발바닥 힘 / 상체 중립 / 다리 정렬 유지

루마니안 데드리프트
- 발바닥 앞쪽 힘 / 가슴 들고 엉덩이 뒤로 빼며 내려가고 끝까지 올라오기

마무리로 스키머신 1000m.
- 마지막 남은 힘 짜내기. ㅎㅎ



먹은 만큼 운동하고

집에 가서 또 저녁 먹고 씻고 남은 시간 토요일 보내기.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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