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부르지 못한 한 사람

추억을 추억으로 두기까지의 시간

by 해루아 healua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지독한 모순이 있었다. 상처받지 않으려 세운 '안전거리'는 나를 지켜주는 방패인 줄 알았으나, 사실 그것은 상대를 겨냥한 채 나에게로 되돌아올 준비를 마친 '부메랑'이었다.




결혼을 한 달 앞둔 어느 밤, 나는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려 명단을 훑다 한 이름 앞에서 멈춰 섰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내 손가락은 그 이름 위에서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 나는, 20년 지기 친구에게 SOS를 요청했다.


"나, JS를 초대하고 싶은데... 판단이 안 서. 도와줘."


친구의 대답은 칼날처럼 단호했다.


"해루아 생각하면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난 싫어. 추억도 추억 나름이지, 다시 이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야. 해루아답게 행동하자."


친구가 말한 '나다운 행동'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금 돌아보면, 그를 초대할지 말지 망설였던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그를 좋아해서도,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그 앞에서 여전히 솔직해질 자신이 없었다.



5년 전, 그 영화 같은 재회가 없었더라면 나는 조금 더 쉬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여름날 우리>의 주인공들을 보며 남몰래 그를 떠올렸던 기나긴 밤이 있었다. 마치 하늘이 내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듯, 거짓말처럼 기적처럼 다음 날 그의 번호가 화면에 떴다.


“해루아, 오랜만에 연락하게 됐다. 별일 없이 잘 지내?”


그 순간 내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우리의 시간을 함께 아는 친구에게 그의 번호가 맞는지부터 확인했다. 그제야 숨을 고르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


“JS 맞아? 엄청 오랜만이네…”


답장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일제히 깨어났다. 그는 정말 많이 고민하다 연락했다며, 우리 사이에만 남아 있던 장면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그는 부산에서 반차를 내고서라도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내가 괜찮은 날을 고르기만 하면 언제든 달려오겠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적극적인 태도와 달리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웠다. 왜 하필 지금일까. 잊으려 애썼던 노력들이 무색하게, 왜 이제야 나타나 견고했던 내 방어벽을 흔드는 걸까.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토록 비껴갔던 타이밍이, 왜 내가 마침표를 찍으려는 이 시점에 장난처럼 다시 돌아온 것인지 하늘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카톡이 왔다.

“만약 그때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해질 용기보다는, 절대 다시는 다치지 않겠다는 오래된 방어가 더 빨리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심장이 또 한차례 세차게 요동쳤다. 하필 그날은 비가 무섭게 쏟아졌는데, 창밖을 때리는 번개 소리가 꼭 내 안의 소란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하지만 브런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쿨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표정을 다잡았다. 내 요동을 그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현재와 과거를 위태롭게 오가며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는 줄곧 내 생각을 해왔노라 고백했다. 함께했던 동기들과는 여전히 잘 지내는데, 유독 자신과만 인연이 끊긴 것이 내내 서운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를 여전히 소중한 사람으로 간직하고 있기에, 언젠가 치러질 나의 결혼식에는 꼭 참석해 축복해주고 싶다는 그의 말.


그 따뜻한 약속은 내가 기억하는 그와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결국 과거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끝이 났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연락처를 지웠고, 그 행위는 익숙한 모양의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왔다.




시간이 흘러 결혼 날짜를 확정하고 나니, 내 찬란하고도 아팠던 시절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를 초대하고 싶다는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내가 함께했던 그 시절의 동기들은 하나둘 흔쾌히 내 결혼식에 오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하지만 정작 그 시절의 가장 거대한 지분을 차지했던 그 한 사람만은 끝내 초대하지 못했다.


다 맞춰진 퍼즐 판 위에, 가장 중심이 되는 조각 하나만 빠져 있는 듯한 기이한 결핍. 왁자지껄한 축복 속에서도 그가 머물러야 했던 빈자리는 선명한 구멍이 되어 나를 응시했다. 마치 가장 공들여 쓴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다음 페이지를 넘겨버린 것처럼... 내 생애 가장 환한 날에 지울 수 없는 씁쓸한 얼룩이 남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돌아보면 나는 사랑을 쟁취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그만큼의 에너지를 다른 데 썼다면 인생의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연애를 시작하면, 가장 결정적인 순간마다 진실된 마음을 꼭꼭 숨기기에 바빴다. 마치 들키는 쪽이 패배인 게임처럼...


이별의 문턱에서조차 나는 단 한 번도 상대를 붙잡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으려 세상에서 가장 쿨한 표정으로 안녕을 말했지만, 사실 그 표정 아래에서 나는 속으로 수천 번도 더 울부짖고 있었다.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기꺼이 내보이는 용기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휘둘렀던 ‘쿨함’이라는 무기는 사실 상대를 베기 위함이 아니라, 내 안의 지독한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는 비겁한 가면에 불과했었다. 결국 그를 초대하지 못한 것은 내 추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여전히 새살이 돋지 못한 나의 여린 진심을 보호하려는 마지막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지인에게 들려온 그의 결혼 소식에, 나는 비로소 참았던 숨을 깊게 내뱉었다. 기이하게도 질투나 아쉬움 대신, 진심으로 그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먼저 차올랐다.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15년 동안 부메랑처럼 날카롭게 맴돌던 연애의 파편들이 비로소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추억은 그저 추억으로 남겨둘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지독했던 관계의 결핍은 그렇게 조금씩 아물어갔고, 나는 천천히 내 곁에 있는 온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