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올라오는 날, 나는 달린다.

나를 지키는 무위(無爲)의 시간

by 해루아 healua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것이 내 곁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만드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생각의 늪이 발목을 깊게 잡아끄는 날일수록, 나는 마음보다 몸을 먼저 문밖으로 밀어낸다. 망설임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은 채, 익숙한 루틴을 따라 무작정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나에겐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뒷산을 천천히 빙빙 돌며 걷거나, 현관 앞에서 러닝화 끈을 조여 매고 곧장 탄천으로 달려갈 뿐이다.



어제도 그랬다. 어김없이 자기 검열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할 때, 나는 이것이 마음이 보내는 비상 신호임을 직감한다.



감정의 기복이 유난히 심한 날엔 정적인 요가 대신 '달리기'를 택한다. 마음이 무너진 날엔 거울 속 내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기에, 그 얼굴을 마주하는 응시조차 버겁기만 하다.



가벼운 차림과 러닝화 한 켤레. 몸과 마음이 무거울 때일수록 준비하는 품이 길어지면 마음은 금세 지치고, 운동은 내 일상에서 아득히 멀어진다. 거추장스러운 장비 없이 오직 맨몸과 두 발로 대지를 밀어내는 이 단순한 행위는, 고갈되었던 내게 의외의 에너지를 수혈해 준다.


러닝을 시작하고 1~3km 구간, 몸이 예열되기 전의 묵직한 저항감을 통과해야 한다. 처음엔 몸이 무거워 마치 점성이 강한 늪을 빠져나오듯 발걸음이 무겁지만, 그 고비를 넘어서는 순간 공기의 질감이 달라진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전해지는 기분 좋은 반발력, 그리고 귓가에 울리는 정직한 심장 박동이 뇌까지 직접 박자를 맞추며 전달되는 느낌. 그 박동을 느끼며 탄천을 달릴 때면 묘한 동질감을 만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수많은 러너들. 우리는 서로 아는 체하지 않지만, 각자의 거친 숨소리를 리듬 삼아 함께 나아간다. 혼자 뛰어서 편안하고, 함께 뛰는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자유로움 속에서 나는 비로소 해방감을 느낀다.



달리기가 왜 불안을 다스리는 데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나의 한계치까지 숨을 몰아붙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가끔은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면, 나를 괴롭히던 복잡한 감정들은 신기하게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몸이 너무 힘들어 마음의 사치를 부릴 틈이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생각하려 해도, 오직 다음 발자국을 내딛는 힘과 흐트러진 호흡을 정렬하는 데 온 신경이 쏠린다. 그 순간은, 가장 완벽한 ‘무위(無爲)의 시간’이 된다.



두 발바닥이 지면을 밀어내고, 두 팔이 몸동작에 맞춰 가볍게 교차하는 감각에만 몰입하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쓰레기 같은 생각들이 나의 굵은 땀방울과 함께 땅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진다.



요가가 나를 '응시'하게 만드는 시간이라면, 달리기는 나를 '비워내는' 시간에 가깝다.



정적인 응시와 동적인 비워냄. 이 상반된 두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조화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던 나를 다시 이 세상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한다.



마음이 감당하지 못한 것들을 몸의 '연소'로 흘려보내는 일. 어쩌면 생각이 너무 많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깊은 고민이 아니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몸을 움직여 불안을 태워버리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돌아와, 따뜻한 물로 뻣뻣해진 목 뒤와 승모근을 적신다. 수증기 가득한 욕실에서 천천히 샤워를 마치고 나면 머릿속을 괴롭히던 생각의 타래들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정직하게 지친 육체의 노곤함이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근육이 이완되며 몸이 침대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이, 나를 가장 깊이 쉬게 만든다.



루틴대로 몸을 움직여 쌓여가는 좋은 경험들로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면 불안이라는 감정은 자취를 감춰버린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애쓰지 않아도, 몸이 먼저 휴식을 명령하는 이 정직한 피로가 나를 침대로 이끈다.



나는 늘 그렇듯이 오늘도 달렸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다. 불안은 여전히 내 삶의 배경 화면처럼 존재하겠지만, 이제 나는 안다.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배경 화면은 흐릿해지고 오직 달리는 나의 실루엣만이 선명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불안의 파도를 잠재우는 것은
더 많은 생각이 아니라,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나의 두 발이다.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평온이 깃든다. 나는 그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나를 지켜냈다. 그리고 다시 흔들리는 순간마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