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잠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을까?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밤의 루틴

by 해루아 healua

오늘따라 문을 열고 들어온 집 안의 공기는 서늘하고도 달큼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이런 날에는 탄천 대신 헬스장으로 향한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우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듯 크런치를 시작한다. 횟수가 쌓일수록 아랫배 깊은 곳이 묵직하게 당겨오기 시작한다.



배가 버티지 못할 만큼 강하게 조여 오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시작한다. 이 고통을 견뎌내는 만큼 내 삶의 뚝심도 단단해질 것이라 믿으며, 끊어질 듯 팽팽해진 복근의 비명을 기어코 10분 동안 버텨낸다.



이어지는 자전거 페달과 하체 근력을 쥐어짜는 고통을 지나, 마지막 피날레는 인터벌 러닝이다. 마의 20분을 지나 마지막 3분간 전력으로 몰아붙이고 나면, 몸은 비로소 가벼워진다.


그때부터는 뛰는 것이 아니라,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된다. 마침내 쿨다운과 동시에 굵은 땀방울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나는 나에게 나직이 속삭인다.



“오늘도 해냈다. 잘했어!”



방금 전까지 달리느라 벌겋게 달아오른 내 몸은 다시 일상의 중력 속으로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밖으로 내달리며 비워냈던 자리에, 이제는 평온을 채워 넣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몸을 이토록 정직하게 움직여도,
마음은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한다.
나는 매일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결코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는 견고했는데
오늘의 나는 이유 없이 나를 의심한다.

잘 가고 있다고 믿다가도,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발밑부터 흔들리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면 다시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대체 왜 다시, 이런 마음이 고개를 드는 걸까?”



그 질문의 끝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잠’이었다. 마음이 흐물흐물해져 걱정이 침투한 날이면, 어김없이 잠을 깊이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숙면을 놓친 날의 감정은 너무도 쉽게 일그러졌다.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의 날이 섰고, 안개 같은 걱정과 불안은 시야를 가렸다.





3교대로 근무해 온 내게 규칙적인 수면은 '난제'였다. 낮과 밤이 뒤바뀐 채 살아온 6년의 세월 동안 무너진 생체리듬을 바로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무엇보다 마음이 쓰였던 건 남편이었다. 12년 동안 밤 10시 반이면 잠들고 새벽 6시면 눈을 뜨는 삶을 정석처럼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혼 직후, 생활 패턴과 잠의 박자가 맞지 않아 서로가 잠을 설쳐야 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습관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며, 그 습관이 곧 한 사람의 견고한 세계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계속해서 조율하기 시작했다. 잠들기 한 시간 반 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욕조가 없는 아쉬움은 샤워기를 뒷목에 대고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 대신한다.



“아, 사우나가 따로 없네. 시원하다.” 혼잣말로 웅얼거리는 사이 체온이 오르고, 샤워 후 조금씩 열기가 식어가는 흐름을 따라 팽팽했던 근육이 느슨하게 이완된다.



보송하게 마른 파자마를 챙겨 입고 침대 머리맡 작은 스탠드 아래에 앉는다. 잠의 세계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관문은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의 찌꺼기들을 다이어리에 미련 없이 쏟아내는 일이다.


걱정 일기


“아, 이제 진짜 다 버렸다.”



텅 빈 마음으로 펜을 내려놓고 거실과 서재, 부엌의 불을 차례대로 끄는 의식까지 마치고 나면, 비로소 내 삶에 가장 고요한 밤이 찾아온다.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유명한 카피가 있다. 이제야 나는 그 말이 단순히 매트리스의 성능이 아니라, 잠에 이르는 정교한 과정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한다.



내 몸의 온도를 낮추고, 잡념을 털어내고,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이 치밀한 과정. 나이가 들수록 잠은 본능이 아니라 기술이 된다. 나는 지금, 그 기술을 성실히 익혀가는 중이다.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잠을 미루며,
정작 오늘의 회복을 포기한다.

하지만 잠을 줄여 얻은 하루는
결코 '나를 잘 살지 못하게' 만든다.



잠을 줄여 억지로 늘려놓은 시간은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야금야금 말려 죽이는 가뭄이자, 엔진에 윤활유 없이 가속 페달만 밟는 위험한 질주다.



결국 그 바스러지는 마음의 균열은 가장 약해진 감정의 틈새를 타고 들어와 나를 무너뜨리고 만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나를 끊임없이 갈아 넣는 삶 대신, 내 삶을 멈출 줄 아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불안이 예고 없이 요동치는 날에도, 그 감정을 억지로 퍼내려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대신 가장 정적이고 완벽한 복구의 공간인 침대 위로 나를 데려간다.



조금 더 일찍 눕는 것은 내일의 나에게 건네는 가장 품격 있는 배려다. 조금 더 깊이 쉬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타인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직 나의 맥박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이 다정한 집념이, 결국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임을 안다.



번뇌를 비워낸 자리에 정적과 평온이 차오르는 밤, 이 루틴 안에서 나는 나를 조용히 내려놓는다.



어둠 속에서 고요히 나를 재조율하는 이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내일의 나를 위한 가장 경건한 충전이다. 오늘의 숙면이 나를 단단히 받쳐주기에, 나는 다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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