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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26. 2024

‘나’와 ‘나’

20살 vs 50살

 [ 20살의 나와 50살의 내가 만난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


며칠 전 소통협력센터 1층 카페 책장에서 이런 물음을 보았다. 몇 초간 이 문장을 쳐다보았다. 나는 20살을 지난 지 20살만큼이나 되었고, 그 반절만 지나면 50살을 맞이한다.



20살의 내가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그런데 키는 나만 하고 뭔가 낯이 익은 아줌마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말한다.

“휴학하지 마. 절대. 너 10년 후면 정말 후회할 거야.”

“저기,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누구신데 저희 엄마도 하지 않는 말을 하시는 거죠?”

“나는 너야. 내가 너라고. 그니까 내 말 들어.”

“뭐래. 정말.”

20살의 나는 철이 없다. 어른에 대한 공경이 부족하다. 아줌마를 노려보고는 그냥 지나친다.



20살의 내가 삼겹살집으로 들어간다. 삼겹살을 먹으러 간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서빙을 하는데, 아까 학교에서 만난 키 작은 아줌마가 손님으로 왔다.

뭐야. 스토커야?

“너, 아르바이트 그만둬. 이 시간에 공부를 해. 학교를 열심히 다니란 말이야. 나중에 후회한다.”

”죄송하지만, 다른 가게에 가서 드세요. “




아니다. 50살의 나는 여유롭고 성숙한 어른이겠지. 20살 친구에게 이런 말투를 사용하진 않을 거다. 아르바이트가 끝날 시간에 식당 앞에서 기다린다. 나를 본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겠지. 그럼 50살의 나는 당황하지 않고, 20살 친구에게 맥주를 사주겠다. 그때 나는 술을 좋아했으니까. 그리고 너랑 친한 친구를 부르라고 할 테다. 이 때는 친구의 말을 더 귀담아들었으니까. 어차피 내가 하는 말들은 귀에 안 들어갈 거다. 자기의 주관과 생각이 우선인 친구니까. 20살의 나에게 맥주를 사주고, 용돈을 주겠다. 그리고 이것은 꼭 말해주고 싶다. 한 가지는 꾸준히 배우고, 게을리하지 말라고. 너무 슬퍼하거나, 어둠에 빠지지 말라고. 밝아 보이지만 슬픈 친구라 남 모르게 많이 아팠으니 말이다.



20살 참으로 곱고 예쁜 나이다.

50살 여전히 곱고 여전히 젊다.

비록 그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건, 50살의 내가 더 편안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이 정말 사실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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