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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Aug 18. 2018

포르투갈의 기억

그리움보다 더 깊은 그리움

가끔씩 자다가 운다.


뉴욕에 살던 때는 친구와 한 방을 썼다. 친구가 이층 침대의 1층, 내가 이층 침대의 2층을 썼다. 내가 울 때 친구는 사다리께에서 몹시 겁먹은 얼굴로 나를 깨우곤 했다. 그런 날 친구는 내게 가까이 오지도, 내게서 멀어지지도 못했다. 혼자 살던 때는 새벽에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굴까 귀찮아하며 깨곤 했다. 그게 내가 우는 소리였단 걸 한참 있다 깨닫곤 했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산다. 간밤에 내가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아파서 그런가 싶어 약을 먹이랴 잠자리를 살피랴 식구들이 부산하게 굴었다. 어수선하고 분주했던 공기의 떨림이 밤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나는 지금 안전한 시간을 살고 있고, 누구도 나를 해하지 못하는데, 기억은 이따금 나를 울린다. 어떤 기억은 나를 살게 하지만, 어떤 기억 비명처럼 숨을 삼킨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 한때 소중했던 것들마저 멀리 돌아 나를 울린다. 그중에는 포르투갈의 시간이 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 시즌5 에피소드4에는 북한 출신 피아니스트가 등장한다. 그의 연주에 짙게 깔려있는 한의 정서를 바틀렛 대통령은 이렇게 술회한다.


There's a Korean word, Han. I looked it up. There is no literal English translation. It's a state of mind. Of soul, really. A sadness. A sadness so deep no tears will come. And yet, still, there's hope.


도저히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는 단어. 해당 언어로 발화할 때에만 오롯이 존재하는 그런 정서가 있다.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민족만이 공유하는 집단의 기억.


포르투갈어에도 그런 단어가 존재한다. 그리움보다 더 깊은 그리움을 가리키는 saudade.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떠나는 연인을 지켜보는 여인의 위태로운 마음. 두고 온 연인과 고향을 떠올리는 선원의 마음. 과거의 영광을 더듬어 추억하는 쇠락한 제국의 마음. 그네들은 saudade의 정서를 엮어 fado를 자아냈다. 고급 식당의 어두운 조명 아래 아스라한 촛불의 흔들림처럼. 햇볕에 말린 여린 꽃처럼.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에서 엉망으로 취한 사람들 사이를 나부낄 때도 구슬픈 선율과 낮은 기타 소리는 언제고 나를 아주 멀고 오래된 시간으로 데려갔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에 진을 치고 앉아 적어도 열 시까지 수다를 떨다 잠깐을 일하고,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점심과 낮잠을 즐기다, 다섯 시쯤 퇴근해서 휴식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아홉 시나 열 시쯤이 되어서야 저녁과 술을 즐기러 밖으로 향하는 느긋한 사람들. 셔터에 두 달 동안 쉬겠다는 패기 넘치는 안내문을 붙인 채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30분이면 바다에 도착하는 지하철 객차에 아예 수영복을 입고 타는 사람들. 길을 물었을 뿐인데 20분 넘게 근방에 얽힌 역사와 제일 맛있는 집과 꼭 가봐야 할 곳을 찬찬히 일러주는 친절한 사람들. 말의 끝이 늘 "리스본이 좋아요?"라는 질문인 선량한 사람들. 삶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결코 잠을 줄이지 않는 사람들. "Minha filha"라는 말을 다정히 건네며 이방인이었던 나를 딸처럼 아껴주던 사람들. 만날 때마다 양 뺨에 키스를 건네는 사람들.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친구로 치는 사람들 곁에서 조건 없는 친애 배웠다.


초콜릿 잔에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포트 와인을 따라 마시며 술은 마실수록 이득이라는 술꾼의 셈법을 배웠고. 양상추, 양파, 토마토가 전부인 샐러드에 올리브유, 레몬즙, 소금만으로 간을 하는 이들에게 간소한 식생활을 배웠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주저앉아 책을 읽고, 담배를 피우고, 축구와 정치와 사랑을 말하지만, 커피를 차게 마신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다. 거의 신경증적으로 동전 한 닢의 부정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이 한때 세계를 제패했고, 독재에 항거했고, 주제 사라마구를 낳았다.


이런 포르투갈의 시간을 꿈에서라도 만나면 그리움에 눈물이 줄줄 새어 나온다. "네가 배울 거라곤 쉬는 법밖에 없어." 그런 선한 말들이 떠오르면, 그들이 내게 saudade를 체화시켰다는 걸 깨닫고 만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때 소중했던 것들. 때로는 오로지 그런 날들만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할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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