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게이저(stargazer)
더는 짙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녹음 속에서 매미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8월의 압도적인 푸르름으로, 다 자란 나뭇잎들이 속살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사방에서 팽창하듯 조여오던 매미 울음이 안녕하고 잔상처럼 사라지길 반복했다. 같은 단어로 만남과 이별을 말할 수 있는 다른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잠을 자지 못했다. 불면은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야 하는 흉터 비슷한 것이 된 지 오래다. 주기적으로 수면제를 처방받지만,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만 복용한다. 그마저도 어젯밤에는 먹지 않았다. 약에 취해 일어나질 못해서 지난주 토요일 오전에 치과 예약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번 주마저 예약을 놓칠 순 없었다. 신경치료를 받은 오른쪽 아래 어금니 잇몸이 며칠 전부터 알람처럼 욱신욱신 제 주장을 해댔다.
다행히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조금 아픈 것은 당연한 과정인 듯했다. 차폐막이라도 두른 것처럼 세계와 유리되어 있던 공간에서 나오자, 더는 갈 데 없이 치솟은 열기에 숨이 턱 하니 막혀왔다. 오늘 운동을 가는 건 정말로 무리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은 운동 끝나고도 잘 수 있어. 일단 가자. 약속된 시간에 스튜디오로 향했다. 폴을 앞에 두고 서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고요해졌다. 스핀, 슬라이딩 스핀, 폴싯, 클라임. 폴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할 줄 아는 동작이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몹시 열중하게 된다. 오늘 배운 동작은 스타게이저. 클라임으로 올라가서 오른쪽 다리는 그대로 폴에 걸어둔 채 왼쪽 다리를 높이 들어 오금을 건다. 오른손으로 감은 다리의 발목을 잡고, 왼손은 왼쪽 귀 뒤로 길게 넘기면서, 허리와 어깨와 목을 뒤로 젖힌다. 별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고정된 축 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건 참 묘한 일이다.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처음 마음을 정한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면 조금은 편안해질까.
폴에 쓸린 열상으로 다리가 울긋불긋 난리인데 그마저 뿌듯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잠을 조금 잤다. 꿈도 없는 단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