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 After
대학원 졸업 후 1년 2개월 간 전업 프리랜서로 일을 했고 이후 첫 번째 기관에서 1년 7개월, 두 번째 기관에서 7개월, 도합 2년 4개월을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지냈다. 지난해 11월 30일 퇴사를 기해 다시 전업 프리랜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전보다 프리랜서 생활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지난 2년 4개월 간의 조직 생활이 나에게 약이 된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되었다. 회사 생활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하나씩 짚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프리랜서 기간에는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필요한 의식이 많았다. 책상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고 몸은 왜 이렇게 무겁고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안 돌아가는 걸까? 세상에 번역 말고 다른 모든 것이 즐거워 보였던 탓에 책상에 앉아있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퇴사 후 두 번째 프리랜서 기간에는 아침에 알람 없이 일어나서 씻고 커피를 한 잔 내려서 책상 앞에 앉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진다. 출근 시간 9시에 맞추느라 새벽같이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몸을 조이는 갑갑한 옷을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채 대중교통에 힘겹게 몸을 싣고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오롯이 혼자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걸 축복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생리현상을 참지 않아도 되고 힘들면 눈치 보지 않고 쉬어도 된다. 누가 내 책상이나 모니터를 볼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으며 말을 받지 않아도 괜찮고, 인간관계나 조직의 역학 관계에 따라 몸을 사리지 않아도 되고, 밥을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 일이 많을 때는 많은 대로 아무 방해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쉴 수 있다.
그저 "일"만 할 수 있는 생활이 이렇게 좋을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24시간 쉼 없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늘 부담이다. 첫 번째 프리랜서 기간에는 불시에 울려대는 휴대폰이 원수 같았다. 메일이 왔다는 알림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고 전화라도 울려대면 메두사의 눈이라도 마주친 듯 공포스러웠다.
지금은 혹시라도 중요한 연락을 놓칠까 통상의 업무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되도록 휴대폰 볼륨을 키워놓고, 제때 연락을 확인하고 바로 답신을 하려고 노력한다. 메일을 잘 받았다는 한 줄이라도 반드시 보낸다. 담당자가 얼마나 기다릴지 알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제때 연락을 받지 않으면 관련 업무 전반이 지연될 수도 있고, 제때 보고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연락에 신경 쓰느라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되는 등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루 최소 9시간 이상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부대끼며 소통해야 하는 환경을 겪은 지라 업무 연락에만 몇 분 정도 할애하는 것은 너무 깔끔해서 어딘지 허전하게까지 느껴진다. 저절로 안부를 묻게 되고, 식사를 챙기게 되고, 명절 인사를 챙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을 곁에 두고 제때 연락을 챙기는 일은 아직도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부분이다. 그저 이전보다는 잘하게 되었다는데 의미를 두려 한다.
사실 첫 번째 전업 프리랜서 기간이 거의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할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은 까닭은 당시 깜냥을 모르고 무모하게 일을 받아서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욕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싫은 소리를 하기가 어려워서 그랬다.
이제는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거절하는 것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훨씬 낫다는 걸 잘 알게 되었다. 담당자가 나보다 더 나은 적임자를 찾아 원활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되도록 빠르고 깔끔하게 거절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일단 일을 받아놓고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무작정 연락두절 잠적을 해버리는 경우이다. 프로답지 못하다는 점은 차치하고 이는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상대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으로는 동등한 위치에서 상대에게 명확히 나의 한계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주면 주는 대로 전부 다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건 나의 운명이나 생사여탈권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내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그 대가를 감내해야 한다. 나의 가용 시간과 하루 작업량을 사전에 명확히 밝혀서, 일을 주는 사람이 나라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큰 그림을 그리게 해주는 편이 양쪽 모두에게 좋다. 상대가 나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같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단념하는 편이 좋다. 당장은 무리를 할 수 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와 내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타협을 해야만 길게 갈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떠올린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는 말을 기억하려 한다.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임을 기억하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