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배를 하며 느낀 점
6월 초에 공덕으로 이사를 왔다. 마포대교까지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만큼 한강과의 접근성이 좋은데 그 덕을 못 보고 있었다. 이사한 지 석 달 여 가까운 이번 주말에야 비로소 그 이점을 누렸다. 토요일에 이촌에서 공덕까지 한강을 따라 걸어서 귀가한 것이다. 처음부터 걸어서 집으로 가야지 마음먹었더라면 막막해서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볍게 시작하고 우연히 시작해야 끝까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계기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강바람과 노을이었다. 여름 끝 서늘해진 바람과 오묘한 색으로 물든 하늘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다. 육교를 건너 한강변 산책로에 들어서니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강둑에 앉아 있는 사람들, 데이트를 하거나 장난을 치는 사람들, 수다를 떨며 산책하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해 질 녘이라 인파가 드물까 봐 걱정했는데 이만하면 걸을만했다. 걷다 보니 어둠이 내렸다. 부러 찾지 않았는데 강 건너 여의도 야경까지 감상하게 되었다. 하얀 몸체와 푸른 지붕으로 빛나는 국회의사당이 점점 더 크게 보이고 앞서 있던 63 빌딩은 어느새 뒤로 처져 있었다.
40분 남짓이나 걸렸을까. 강을 따라 올라와 바라본 도시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버스나 지하철, 자동차로 이동할 때와는 달리 두 발로 걷고 오감으로 느꼈기 때문인지 도시는 더 이상 지나치게 크거나 높지 않았고 손에 닿지 않아 무력감을 주지도 않았다. 어딘지 무심한데 다정하고 여유로워서 친밀하게 느껴졌다. 산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나 오피스텔 화단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속도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에는 서울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저걸 꼭 타봐야지 벼르면서 오며 가며 자전거가 있는 곳을 눈여겨보아두었었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직접 ‘따릉이’를 빌려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한 시간 동안 1,000원에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일일권을 구매한 뒤 QR 코드를 찍고 미리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잠금장치가 풀렸다. 안장 높이를 조절하고 자전거에 탄 뒤 두 다리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단번에 기분이 튀어 올랐다. 내가 힘을 가하는 딱 그만큼 정직하게 나아가는 단순함이 좋았다. 페달을 세게 굴려 빠르게 나아가면 바람도 그만큼 세차게 불었다. 목에 걸려 있던 숨이 시원하게 트여 나왔다. 가만히 쉬어야 휴식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움직이니 개운해졌다.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머리를 쓴다. 몸과 머리를 딱 반반씩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체로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기 때문에 여가시간에 그만큼 몸을 움직여서 균형을 맞춰 주어야 한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생각을 비우는 한 가지 방법으로 요가 선생님은 자기 전 하루 50배 처방을 내려 주셨다. 흔히 말하는 108배와 동일한 요령으로 50배만 하는 것이다. 두 팔을 크게 벌려 합장을 할 때 어깨가 활짝 열린다. 그대로 허리를 깊이 숙일 때는 양쪽 오금과 허벅지 뒤쪽이 길게 늘어나면서 뻐근한 느낌이 든다. 무릎을 꿇고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엎드려서 이마를 바닥에 댈 때 나의 존재는 겸허하게 낮아진다. 고요하고 평온해서 영원히 머물고 싶은 상태가 된다. 그대로 팔을 들어 올려 손목을 젖히면 뭉쳐있던 근육이 풀리면서 손목이 시원해진다. 다시 합장을 하고 오롯이 양쪽 발끝에 의지해 몸을 일으키면서 발가락 끝으로도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배운다. 이 과정을 50번 반복하면 손가락 끝으로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개인에게 할당된 체력을 계량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가만히 휴식하면 가진 체력의 총량 내에서 충전이 되지만, 운동을 하면 체력의 총량 자체가 늘어나는 것 같다.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나가서 땀이 흠뻑 나도록 움직이는 것과 볕이 잘 드는 창가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 둘 다를 무엇이 먼저라 할 것 없이 좋아한다. 둘 모두 영혼을 채우는 밀도 높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다만, 내가 머리만 너무 큰 가분수는 아닌지, 육체에만 지나치게 매몰되어 중요한 가치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며 조율하는 일은 5:5로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일도 어느 한 시점에 끝나는 단편적인 일도 아닐 것이다. 머리와 손가락만 비대한 캐리커처를 떠올려본다. 거기에 키보드와 모니터의 전선이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해본다. 소름 끼치는 모습이지만 자화상 같다고 느껴진다. 원하던 원치 않던 정신노동은 매일의 일상이다. 최대한 이를 상쇄하기 위해 신체활동을 루틴으로 삼는다.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스트레칭부터 한다. 점심시간에는 요가를 가고, 자기 전엔 50배를 한다. 그저 일상이 아주 조금씩만 더 수월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