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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Apr 02. 2021

삶이 무의미해서 재밌다

궤변인듯 아닌 듯 궤변인 글

삶에는 의미가 없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니까.

그 어떤 목적도 없다.

조지프 켐벨의 말처럼 우리가 만들어 낼 뿐.


요즘 종종 침대에 누워서, 혹은 의자에 기대어 생각에 잠길 때마다 인생 **무의미하다 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걸 더 깊이 느끼는건 조울증 덕분이다. 고맙다 조울증. 


조울증은 '재발'이라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이걸 특별하다고 하려니 좀 자괴감이 들지만, 어쩌겠나 이렇게라도 포장해야 정신승리라도 하지.


어쨌든 재발은 그간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재발할 수 있고 아예 아무 것도 안해도 재발한다. 단지 관리하면 빈도가 줄고 후유증도 적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 조울증 6년차, 그동안 재발도 몇번 경험해보고 입원도 3번 해봤다. 그럴때마다 느끼는 건 허무함? 그리고 시시포스가 된 느낌. 


조울증 환자들이 평생 한 번 이상의 자살을 시도하고 많은 수가 성공한다. 난 자살을 하면 안된다는 입장이 아니므로 여기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하진 않는다(인간이 가진 최고의 최대의 자유는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조울증 환자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는 시시포스와 같은 자신의 굴레를 벗을 단 하나의 방법이 자살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생 재발과 씨름하면서 살아야 하고 조울증으로 삶이 망가지는데 - 실제로 조울증 발병후 70%가 실직 등 직업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대다수의 환자들이 사회 복귀에 실패한다. 그 결과 상당수의 환자들은 요양원 혹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고립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걸 견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자살 안하는 게 신기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자살하라는 건 아니고. 


무의미함을 곱씹고 있는 요즘 역설적으로 나는 더 잘 지내고 재밌고 살만하다고 느낀다. 약 덕분이기도 한데 지난 6년간 요즘처럼 괜찮았던 적은 없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 글을 쓰는 게 가능해지고 책도 그만큼 읽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도살장 갈 날만 기다리는 소처럼 살다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시간도 많았으니까. 어쨌든 요즘은 정말 오랜만에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 뭔가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나는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한 것이라는 걸 느낀다. 죽음, 그리고 재발 앞에서 이런 일상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니까. 그래서 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또한 그러면서 너무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무언가를 성취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내가 죽으면 그 모든 것은 사라진다. 명예? 내가 죽었는데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너무 아둥바둥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거 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살면 된다. 


인생이 무의미한 것처럼 희망만큼 덧없는 것도 없다. 에릭 호퍼가 말했듯 인간에게는 희망보다 용기가 더 필요하다. 희망은 그 자체로 현실이 아니다. 근거 없는 바람일 뿐. 하지만 용기는 다르다. 현실이 어떻든 상관없이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지옥을 걸어가고 있다면 계속 걸어가라는 처칠의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내겐 희망이 없다. 재발이 없을 거라는 희망도 없고 내가 자살을 안 할 거라는 희망도 없다. 그저 지금 뭘 하는가, 뭘 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자살로 생을 마감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 것, 내가 글로 먹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쓸 글을 썼다는 것. 이게 전부다. 



+요즘 에릭 호퍼의 책을 읽고 있는데 하나 같이 다 띵언이라 감동의 폭풍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포리즘의 매력, 그리고 그 특유의 날카로움에 깊이 공감하는 중. 맹신자들 읽었을 때부터 알아봤는데 길 위의 철학자 읽으면서 더 빠져들고 있다. 비슷한 생각도 꽤 많고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어렴풋이 생각만 했던 부분을 알게 된다. 생존해 있다면 그랜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궁금하실 분이 있길 바라며 

1. 일어나자마자 30분 글쓰기 - <작가수업>에 나온 방법으로 무의식을 이용한 글쓰기 훈련. 생각 없이 멈추지 말고 계속 써내려가야 한다. 아무말 대잔치가 목적. 

2. 작법서 읽기 - 무작정 글 써봤자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축구선수가 기초 훈련을 하고 기본기를 다지듯 글도 마찬가지라 소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당분간은 작품을 쓰기보다는 공부를 우선하기로 했다.

3. 5500자 쓰기 - 보통 한시간 정도 걸린다. 최근에 정리하고 있는 스토리를 무작정 손 가는대로 쓰고 있다. 중간부터 쓰고 있는데 들쭉날쭉해서 나중에 모은 다음에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 한다. 글쓰는 감각을 유지하려고 하는 일. 글의 퀄리티는 모르겠는데 일단 이만큼 쓴다는 거 자체가 뿌듯하다. 

4.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컨디션일 때는? 그래도 작법서 읽고 5500자 쓴다. 

자잘한 다른 일들, 예를 들어 아이디어 정리, 플롯 다듬기 등 중요하지만 급한 건 아니거나 청소처럼 조금 미뤄도 되는 일들은 안하지만 작법서 읽기와 5500자 쓰기는 반드시 하기로 했다. 이거도 못하면 작가 때려쳐야 한다는 각오로 하는 중. 스크리브너로 하고 있는데 정말 최고다. 이거 쓰고부터는 한글이나 워드 거의 사용안하고 있다. 

써놓고 보니 글의, 글을 위한, 글에 의한 하루다. 실제로 보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밥먹다가도 아이디어나 문장, 짧은 스토리나 장면이 떠오르면 쓰고 화장실에서도... 쓴다.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 노트와 펜을 손닿는 곳곳에 배치해놨다. 뭐하다가 침대에 다이빙했는데 생각나면 책장에 꽂아둔 노트에 쓰고 자다 일어나서 생각나는 게 있으면 또 누워서 끄적인다. 고로 내겐 24시간이 일하는 시간이다. 노동법 위반 아닌가?ㅋㅋㅋ 뭐 재밌으니까 상관없긴 하다. 5500자 쓰기도 못할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잘만해서 역시 해봐야 아는 구나 + 글쓰는 게 적성에 맞긴 맞는가보다 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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