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그러니까 한 3년전? 쯤에 다산북스에서 서평단에 선정되어 썼던 서평을 옮겨봤다. 크... 오베 할아버지는 정말 사랑꾼이셨군요. 지금까지 3번 정도 읽었는데 이번엔 영화로 봐야겠다.
내용 :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는 말을 했다. 로맹 가리의 소설 <여자의 빛>에서는 “남자를 남자답게 하는 것은 여자”라고 한다. <오베라는 남자>는 한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잘 그려낸 소설이다.
여기 우리의 주인공 오베가 있다. <여자의 빛>에 나오는 미첼처럼 절망과 운명에의 부조리에 신음하고 있지는 않지만, 충분히 시니컬하며 미첼과 마찬가지로 아내의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 끝내 오베는 자살을 통해 아내 곁으로 가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 즉 현실과 회상이 반복되면서 오베와 그의 아내, 그리고 혼자 남은 오베가 겪게 되는 일상이 낱낱이 공개된다. 우리 - 독자 -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차갑고 시니컬한 그 모습 속에 담겨진 따듯함이라든지, 아니면 그의 어려웠던 성장과정을 통해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원리원칙주의자, 고집불통, 과묵함, 아내의 부재가 가져온 외부세계와의 단절이 오베를 고독의 극단으로 이끌어가던 때, 새로운 이웃이 그의 삶에 끼어들게 된다. 주차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 부부는 첫 만남에서도 그를 열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의 자살도 방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는 그들로 인해 오베는 늘 열받지만, 차츰 세상을 향해 그동안 잠가 두었던 문을 열게 된다. 아내가 바래왔던, 그녀가 살아 생전에 추구하던 모습이 그녀가 없는 지금에서야 실현된 것이다. 오베는 과거의 잘못-친구와의 오랜 갈등-을 청산하고,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도우며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평온한 가운데 그가 그토록 바래왔던 그녀 곁으로 떠난다. 주위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선물을 남긴채.
책을 읽는 내내 오베가 옆에서 투덜거리는 듯했다. 작가의 글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도서관에서 숨죽여 웃었으며, 운명적인 사랑을,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상대를 만난 오베에게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비극적 운명에 대해서 애도를 표하고 그가 편안히 눈을 감았을 때, 콧끝이 찡했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책을 덮고 나서 아내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오베를 상상했다. 나에게도 오베와 같은 행운이 오길 바라면서. 참, 그의 묘비명이 없어서 하나 지어봤다. 그가 마음에 들길 바란다. “자기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 지 알고 있던 남자, 소냐 곁에 잠들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최고의 남자는 잘못에서 태어난다고 했어요. 나중에는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경우보다 훨씬 더 나아진다고요.”
나도 이런 여자 만나고 싶다... 물론 나도 오베처럼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남자가 되고 싶고.
“난 여자가 있어. 지금 집에 없다 뿐이지.”
크... 소냐의 아버지가 한 말인데 정말 상남자이신듯. 소냐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재혼안하심.
(소냐-아내-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지금보다 두 배 더 날 사랑해줘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오베는 두 번째로-또한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가 지금껏 그녀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알면 알수록 진국인 오베라는남자. 이남자 순수 사골 100%같아.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남자가 될지를 결정하는 때가 온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짓밟게 놔두는 인간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때가.’
오베가 분노 폭발했던 날.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리는 거 아니랬지!ㅋㅋㅋ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차를 탔다가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처음 웃은 게 바로 그날이었다.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69p
이 책에서 정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명문장인 것 같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153p
겉모습이 아닌 내면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요즘처럼 사랑도 스펙으로 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나또한 그러고 싶은데 당장 주변에 외모적으로 우수하신 분들 지나가면 정신을 못차리니... 아직 멀은듯하다.
추천 책 :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오베가 성격과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서), 로맹 가리, <여자의 빛>(서평에서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