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한 대학교에서 겸임교수 제안이 들어왔다.
이 도시로 내려온 뒤 대학 강의를 쉬어 온 지 6년 만의 일이었다.
최근의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예전에 몸담았던 회사들에 연락을 돌렸다.
그중 짧았지만 가장 강렬한 3년을 보냈던 한 국립 문화기관에도 전화를 걸었다.
내가 있던 조직은 정부 소속 공무원 조직과 새로운 운영 조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홈페이지에 안내된 번호로 연락을 해야 했다. 오랜만에 듣는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내 이름을 전하고 하루를 기다렸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어 용건을 말하자 담당자가 오전 10시 이후에 출근한다며 메모를 남겨 달라고 했다. 그런데 몇 분 뒤, 낯선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사투리가 지긋하던 그 담당자였다.
"선생님! 저 ○○이에요. 잘 지내시죠? 이사 가셨다고 들었는데… 어제 바로 못 알아봐서 죄송해요.”
재미있게도 그 기관에는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셋이나 있었다. 출근 첫날 다친 손 때문에 찾았던 보건실의 간호사도 같은 이름이었고, 내가 기획한 사업의 홍보를 도와주던 홍보 담당자 역시 같은 이름이었다. 그중 나는 가장 먼저 그 도시를 떠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곧바로 경력증명서를 이메일로 보내주며 장문의 편지를 덧붙였다. 나는 떠나왔지만,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며 나의 건승을 빌어주었다.
이혼 후 도망치듯 내려갔던 그 도시에서 나는 원룸에 살며 낯선 업무와 외로움을 온전히 마주해야 했다.
2주에 한 번, 어렵게 근무 일정을 조정해 2박 3일씩 다른 도시를 오가며 아이들을 돌봤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고 조건이 좋은 직장이라 해도,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을 수 없다면 과감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안정적인 자리를 내려놓고, 불확실한 선택을 감행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메일함을 들여다보았다. 첨부된 경력증명서보다 몇 줄의 안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떠나온 자리에서 여전히 내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추운 겨울, 괜시리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