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집나간 엄마가 아이를 만나는 방법
이혼 후 10년 #20
내가 새로운 도시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은 할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나와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이사 후에 아이들과 면접교섭을 진행할 장소가 달라졌다고만 통보했다.
백수인 아빠가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서울에서 지낼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는 나도 서울 아닌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나마 서울이라면 KTX도 있고, 내가 살던 빌라도 있었지만, 고향으로 가야 한다면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왕복 10시간이 걸려야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들 근처에 친정집이 있어서 외갓집에서 2박 3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느냐였다.
감사하게도 서울에서 만났던 선생님들은 나의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상황들을 익히 아시고 우리 아이들을 더 애틋하게 챙겨주셨다.
바쁜 일과 중에도 내가 어린이집으로 전화를 걸면 교실에 있는 딸아이를 원장실로 불러다가 통화하게 해주셨다.
"예은야! 엄마가 멀리서 전화하셨네.
좀 받아봐."
"엄마? 엄마?"
갓 두 돌을 넘긴 딸아이와 긴 대화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힘 없이 대답하는 딸아이의 "엄마"
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긴 사랑고백을 했다.
"응... 응..."
어느덧 자리를 떠나버린 딸아이 대신 선생님이 수화기를 받아 들고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
운이 좋아 서울에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예은이를 잠시라도 볼 수도 있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처음엔 새로 다니는 어린이집이 어딘지 알 수도 없었다.
평일에 휴가를 내고, 집 근처에서 등원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난 후에야 어디에 다니는지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 담벼락 근처를 한참 서성이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벨을 눌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예은이 엄마인데요.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경계심을 애써 누르며, 미소를 띄기 위해 노력하던 한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었다.
딸이 보고 싶다는 나의 부탁에 선생님은 어디선가 딸아이를 데리고 왔다.
할머니가 잘랐는지... 삐뚤빼뚤한 머리를 한 예은이의 모습이 낯설었다.
딸도 잔뜩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와 나를 와락 안았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선생님한테 나의 상황을 최대한 잘 설명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맘 편히 일과 중에 통화를 하거나 편하게 아이를 볼 수는 없었다.
그저 고향집에 일찍 도착하면 어린이집 주위를 돌며, 담 너머 딸아이의 모습을 찾을 뿐...쉽게 담을 넘을 순 없었다.
마치 어느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집 나갔던 엄마가 학교에서 나오는 아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눈물짓던...
내가 꼭 그 엄마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