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엄마는 그냥 가도 돼...

이혼 후 10년 #40

by 누구니

"이번 주말에는 애들 데리고 멀리 가지 않도록 해"

남편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알았다"는 성의 없는 답변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불현듯 시어머니의 마지막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딸아이를 시켜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이 어딘지 물어보게 했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전화해"

어깨너머로 짜증 섞인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몇 시간 후 시어머니의 부고 문자가 전해졌다.

할머니의 마지막이라도 볼 수 있게 발인 전에 아이들을 장례식장으로 데리고 와 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달 추석...힘겨웠던 시어머니의 마지막 통화가 다시 떠올랐다.

"아비 혼자서 추석 상을 차려야 되는데... 니가 가서 나물이라도 무치면 낫지 않겠냐?"

병간호로 정신 없는 아빠를 대신해서 애들을 돌보고 있기도 했고... 시어머니의 한마디가 신경은 쓰였지만, 가볼 마음이 내키진 않았다.


추석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집을 가보니 거실에는 차례상 위에 제기와 음식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싱크대 주위에는 비닐 포장지와 먹다 남은 맥주 캔들이...마치 그의 복잡한 마음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그래도 차례상은 차렸네'라는 안도감으로 어질러진 집안을 겨우 청소하고 나왔었는데...

이제는 '차례상을 차리러 집으로 가라'는 시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마치 나를 위한 유언처럼 느껴져 괴로웠다.


나를 불행한 결혼으로 떠밀었던 시어머니...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시어머니인것 같아 못내 원망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고 하니 퉁명스럽게 대했던 지난 날들이 그저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해맑게 주일을 보내고 있던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소식을 전했다.

“왜?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왜 돌아가셨어?”

두 눈에 고인 눈물을 어떻게든 부여 잡으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애써 담담한 척...한참 동안이나...집에 있지도 않은 검은 옷을 찾기 위해 서랍을 휘져었다. 빈소에서 쓸 장난감들을 챙기며 어색한 농담도 잊지 않았다.


장례식장에는 전남편의 친척들과 친한 친구 몇명이 모여 있었다. 결혼식 이후 전혀 왕래가 없었던 친척들을 장례식장에서 다시 대면하게 되니 무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일찍 빈소를 찾아준 게 고마웠는지 전남편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색한 포옹을 했다.

한구석에서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예전에 결혼식장에서 마주쳤던 낯익은 얼굴들이 애써 친근한 말들을 나에게 걸어왔다.

불편한 마음에 밥맛은 없었지만, 달리 할 말도 없던 나는 쉬지 않고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밥알을 넘겼다.


‘그래도 그 짧은 결혼 기간 동안 애를 둘이나 낳아드려 다행이네...’

식구가 귀한 집에 손자가 두 명이라도 있어서 시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이 그렇게 외롭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하면서 말이다.


하루 아침에 엄마처럼 의지하던 할머니를 잃은 아이들...그저 누구라도 와서 위로해줬으면 했다.

하지만 친정 식구들이나 친구들은 문자로만 마음을 전할 뿐 달려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사님... 애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늦은 저녁이었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담당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고향에서 유일하게 나의 모든 집안 사정을 알고 계신 목사님과 주일학교 선생님이 한달음에 달려와주셨다.


평소 전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래서 일부러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절로 나들이를 갔었다.

그랬던 그가 교회 사람들의 조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다행히, 전남편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이내 지우고, 목사님들의 조문을 받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목사님과 선생님들을 반기며, 그동안 본인들이 빈소를 찾은 손님들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와중에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자리를 뜨자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일어나 테이블을 치우고 다시 상을 차렸다.

'그냥 계속 같이 살았다면, 나도 아이들과 저렇게 했겠네...' 자기들의 몫을 기꺼이 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다음날, 퇴근 후 아이들이 걱정된 나는 다시 장례식장을 찾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신경이 쓰였다.

검은 옷을 입고 어두운 얼굴로 나온 아이들… 내 차에 올라타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서로 얼마나 열심히 손님 상을 차렸는지 밝은 목소리로 앞다투어 자랑을 했다.


내가 가져간 물건들을 빈소까지 옮겨주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엄마는 불편할 거니까 그냥 가도 돼. 거기 친척들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구나.’


워낙 어릴 때부터 이런 상황으로 살아온 터라,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따로 설명한 적이 없었다.

가끔은 ‘왜 엄마는 우리 집에 안 살아?’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내게 묻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추측을 하며 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이혼 후 갑작스럽게 맡게 된 두돌짜리 손녀와 다섯살 손자... 시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순수함을 잘 지키면서도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늦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머니...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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