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0년 #41
"모든 슬픔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절에서 할머니의 49제를 올리고 있는터라 아이들은 매주 교회와 절을 교대로 오갔다.
나와 함께 있는 주말이면 9시에는 교회로 갔다가 12시가 되면 아빠를 따라 사찰을 방문해 긴 염불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다시 만난 아이들은 절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얘기했다.
“엄마! 절에서 먹는 밥은 고기가 없어도 맛있어. 신기해!”
“이번 주에는 엎드려서 절하라고 했을 때 하나님한테 기도를 했는데... 일아나 보니까 끝나있더라고... 후훗"
절에서 보내는 긴 시간이 쉽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이별하는 자리가 슬플 만도 한데... 그렇게 아이들은 우울한 기색도 없이 아빠의 든든한 가족으로 49일을 잘 버텨주었다.
나는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어, 아빠가 없는 틈을 이용해 집을 둘러보았다.
추운 겨울에도 애들 아빠는 거실에서 잠을 자는지, 시커멓게 된 담요와 과자봉지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방에는 미쳐 버리지 못한 옷가지들과 침대, 병원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나마 지난 추석 때 청소했던 딸아이의 방은 나름 깨끗했지만, 아들의 방은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책꽂이에는 아빠가 학생 때 읽던 문학도서와 대학 전공서적들이 꽂혀있고, 낮은 의자와 맞지 않는 거대한 책상에서는 공부를 하기 어려워, 시험기간이면 스터디카페를 전전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장례식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집안은 크게 정리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여전히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하는 것인지... 예전에는 병간호로 바빴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고질적인 문제로 보였다. 마치 이혼 직전, 쓰레기로 가득한 자기 방에서 빠져나오지 않던 전남편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지저분한 집에서 자녀 교육에 관심 없는 아빠가 아이들의 세끼를 어떻게 챙길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수인 아빠의 무기력함과 게으름을 아이들이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다.
사실 내가 고향으로 돌아온 후, 아이들이 7살, 10살 무렵일 때, 나 홀로 양육권변경소송을 1년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 청결하지 못한 몸상태, 지저분한 주거 환경, 화풀이로 애들의 물건을 부수는 행동 등을 사유로 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아이들의 환경을 바꿔야 할 만큼 극도로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때 영문도 모른 채 법원에 따라온 아이들도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5년이 흐른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악화된 것 같았다.
할머니가 제 때 깨워서 밥이라도 챙겨줬지만, 이른 아침에 합창연습을 가야 하는 딸은 겨우 혼자 일어나 세수만 하고 내 차에 올랐다. 아이들의 등교는 당연히 나의 몫이었고, 하루종일 일을 하지 않는 아빠는 집에 갇혀있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참다못한 나는 집 안을 정리하고, 일을 다시 할 때까지라도 아이들을 내가 양육하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짧고 간략했다.
“애들한테 물어보지”
태권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이사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계속 혼자서도 잘 살아왔잖아. 그런데 아빠는 갑자기 할머니도 안 계신데, 우리까지 엄마 집으로 가면 너무 외로울 거야.”
나는 집안 상태를 비롯한 현재의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딸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고 아빠를 혼자 내버려 둘 순 없잖아.”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백수라며 놀리고, 머리카락이 예전보다 많이 빠지고 뱃살이 물렁해졌다며 장난쳤었다. 하지만 그런 아빠와 시간의 쫓김 없이 편하게 보내는 것을 좋아했었나 보다.
춥고 지저분한 집이었지만,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고, 친구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편의점과 노래방도 같은 건물에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면 늘 빈둥거리는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이들의 하굣길은 외롭지 않았다.
내게는 부족하고 모자라 보였던 아빠와 집안 환경이, 아이들 눈에는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이혼 후 10년, 내게 모든 것이 아쉽고 불완전하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걸어온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시간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그 사실에 나는 깊은 안도감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