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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콩나물

by 누구니

아버지를 보내고 처음 맞는 추석이다.
모든 것이 낯설다 못해, 긴 명절 연휴가 공포처럼 느껴진다.

요즘 내가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은 엄마와 단둘이 있을 때다.
예전에는 아버지와 엄마, 이렇게 셋이서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두 분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웠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먼저 떠나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 더 힘들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를 감당하는 일

그 뒤에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지난날을 후회하는 엄마를 지켜보는 일...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이렇게 바닥까지 끌어내릴 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이혼한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늦은 저녁 식사 자리에만 겨우 얼굴을 비췄겠지만,

올해는 허전한 집안을 생각해 아이들과 친구 집 강아지까지 데리고 친정에 왔다.

하지만 엄마는 누런 강아지를 보자마자 “남의 집 강아지는 왜 데리고 왔냐”며 짜증을 냈고,
올케와 오빠들은 음식하는 데 털이 날린다며 싫은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눈치만 보던 아이들은 두 시간 넘게 강아지를 산책시키다,
“그냥 강아지 다시 집에 데려다주자”고 했다.


그렇게 잠시 외출하고 돌아온 사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현관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큰오빠가 킥보드를 타고 허둥지둥 들어섰다.
우산을 찾느라 집 안을 분주히 뒤적이다가 다시 집을 나갔다.

알고 보니, 엄마와 함께 콩나물을 사러 나갔던 오빠가 세차한 자동차 발판이 더러워질까봐
엄마를 킥보드에 태우다 그만 넘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오빠는 우산 하나만 쏙 챙겨 전해주고는, 엄마 혼자 그 비 속을 걸어오게 했다.

잠시 뒤, 콩나물 두 봉지를 힘없이 손가락에 걸고 엄마가 퉁퉁 부은 얼굴로 현관에 들어섰다.
그러면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세상에… 이런 효자는 없다.”


그까짓 콩나물이 뭐라고...
아들, 며느리 다 놔두고 직접 나선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세차한 자동차가 아까워 킥보드를 선택한 오빠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10분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후회도 남았다.

엄마는 그날 내내, 음식을 만들며 연신 휴지로 눈물과 콧물을 훔쳤다.

보다 못한 내가 "그러게 뭐하러 콩나물을 직접 사러 나갔어?"라고 핀잔을 주자

엄마는 설움에 목놓아 울었다.

며느리들과 자식들은 애꿎은 콩나물만 탓했지만, 엄마를 울린 건 분명 콩나물이 아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와의 이별, 어렵기만 한 회사생활, 현금인출기처럼 느껴지는 부모 역할까지.

그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는 내 인생에서

가장 난감한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다.

지난 설명절에 쓴 나의 브런치 글을 보다가 '왜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하며

그때의 무심함이 이제 후회로 밀려온다.

다음의 자책을 막기 위해 엄마에게 좀 더 살갑게 대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내 앞에서 좋고 싫음을 숨기지 않는 엄마를 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민다.


아들, 며느리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을 오직 ‘딸’이라는 이유로 여과 없이 나에게 쏟아낼 때면, 나는 마치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 든다.

그러면 나도 결국 오늘을 버텨내기 위해 감정의 필터를 벗고 되받아치게 된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사랑으로 가족을 섬기라’는 말씀으로 마음을 무장해 돌아왔지만,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해야 하는 명절 동안 무너져가는 내 감정과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허탈함이 밀려온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마 전 정신과에서 받아온 우울증 약을 손에 쥐고 다시 고민에 빠진다.

“이 약을 먹으면, 조금은 더 편안하게 가족을 대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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