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남은 차가운 껍질에 뜨거운 눈물을 부어'
새벽 4시 30분,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가 조용히 흐른다.
왜 이런 잔잔한 곡을 알람으로 설정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가족들이 깰까 서둘러 알람을 끄고,
식탁 위 안경을 집어 얼굴에 고정시킨다.
정수기 위에 컵을 올려두고, 작두콩 잎을 넣는다.
비염에 좋은 차를 고른 아내의 마음이 떠오른다.
컵을 들고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면 신문이 손잡이에 아슬아슬 걸려 있다.
잠옷 차림이라 재빨리 집어든다.
신문을 펼쳐 작두콩 차를 마신다,
부동산 기사, 정부 정책, 모르는 용어는 찾아가며 읽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러닝화를 신는다.
현관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매만지는 건 새벽 의식 같다.
공원까지 3분, 스트레칭을 하며 걷는다.
새벽부터 부지런한 이들이 많다.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어젯밤 술이 덜 깬 사람까지.
러닝 기록 앱을 켜고 달리기 시작한다.
초반부터 호흡이 거칠다.
'왜 이렇게 안 늘지...'
뒤에서 달려오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앞질러간다.
'혹시 손기정 할아버지신가.'
혼잣말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뒤쫓아보지만 점점 멀어진다.
공원 두 바퀴, 대략 3km쯤 달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숨은 차지만 상쾌하다.
누구에게 이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승리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 새벽 기상을 시작한 건 단순했다.
하루가 부족했기 때문.
퇴근해서 밥 먹고 집안일하면 끝.
아이들 재우다 함께 자버리기 일쑤,
늦게 자는 건 어렵고
차라리 더 일찍 일어나 보기로 했다.
새벽 4시는 무리였다.
출근해서 흐리멍텅한 얼굴로 하루를 버티기 어려워
30분을 양보해 4시 30분으로 정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요한 새벽,
세상은 조용하고 나만 깨어 있다.
그 시간에 마시는 차 한 잔,
신문 한 장,
그리고 내 안의 생각들.
조용한 시간 속에
나는 나를 세운다.
새벽 기상 이전의 나는 시간을 '때우며' 살았다.
출근하면 퇴근을, 월요일이면 주말만 기다렸다.
큰아이가 말하길,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건 휴대폰 보기"
충격이었다.
삶을 흘려보내던 내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이제는 시간 하나하나가 아깝다.
하루를 24시간이 아닌 26시간처럼 쓰기 위해,
남들보다 이른 새벽을 내 시간으로 만들었다.
신문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새벽기상을 결심한 또 하나의 이유,
"경제적 자유"
맞벌이지만 월급만으로는 빠듯한 삶.
그래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투자 지역을 걸어 다니며
동네 분위기를 익히고,
신문에서 흐름을 읽고,
나만의 기준을 세워간다.
나는
가족이 원하는 것을
돈 때문에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식당에서 가격보다는 먹고 싶은 것을 고르고
부모님께 여행을 선물하고,
아이들의 꿈 앞에
"돈 때문에"
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새벽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의 움직임에도 귀 기울이게 됐다.
신문을 덮고 창밖을 보다가,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두콩 차를 한 모금 마시다가
불쑥 시가 스며들었다.
아침의 찻잔,
아이의 투정,
걷다 마주친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도
그대로 흘려보내기엔 아까워
단 몇 줄로 붙잡아둔다.
바쁜 하루 속,
짧은 문장이지만 마음을 담아 쓸 때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새벽은 나를 바꿔 놓았다.
시간을 아껴 쓰는 법,
무엇이 소중한지 알아보는 눈,
그리고 일상에서 시를 찾는 마음까지.
새벽 기상 4년 차,
남들보다 조금 먼저 깬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