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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 편

by 이운수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중문 한가운데 작고 귀여운 글씨로 적힌

하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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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이엄마

이가은


엄마는 잔소리쟁이다

엄마는 요리사쟁이다

엄마는 설거지쟁이다

엄마는 빨래쟁이다



둘째 가은이가 시를 썼다.

언젠가부터 내가 시 쓰는 모습을 보며
“아빠 시집은 언제 나와?”

묻던 아이였는데
슬며시 자기도 시작해 본 모양이다.


「쟁이엄마」를 읽으며
괜히 찔려서,
이제는 살림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쟁이’ 정도는 나도 해볼 수 있겠지.


그 아래, 조그맣게 쓰인 한 줄.


'뒤를 보시오. 시 다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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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가은


아빠는 뚱뚱하다

아빠는 슈퍼맨이다

아빠는 내 편이다



웃음보다 먼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빠는 내 편이다.’
그 한 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딱히 뭐 잘해준 것도 없는데.
가은이 눈엔 내가 ‘슈퍼맨’이고,

‘내 편’이란다.


문득,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란
거창한 능력보다
그저 늘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것,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내 편이라는 확신을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뚱뚱해도 좋다.
가끔 지쳐도 괜찮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아이 눈에
언제나 '내 편' 아빠로 남을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그거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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