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5회 희망플러스 출생 장려 수기 공모전 장려상
안녕하세요.
오늘 대구에서 열린 제5회 희망플러스 출생 장려 수기 공모전 시상식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열린 경북문경연가 디카시 공모전 시상식과 일정이 겹쳐, 이곳으로 오게 되었네요.
조심스럽게 꺼내어 쓴 이야기가 장려상이라는 큰 상으로 돌아왔고, 그 기쁨을 직접 마주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출산과 육아의 이야기를 수기로 풀어내는 일은 제게도 다시 그 시간을 꺼내어 마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마음에 공감해 주시고, 이렇게 상까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잠시 그 현장의 여운을 나누며, 이어서 이번에 입상한 제 작품을 소개합니다.
29살, 군복 입은 청춘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거친 훈련 속,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명령을 따르던 우리는 어느새 인생을 함께 걸어갈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음이 통했고, 서로의 고단함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었으니까.
군인의 길은 늘 도전이었지만, 서로의 눈빛 속에 미래를 그리며 우리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 한 달 뒤, 훈련으로 늦게 떠난 신혼여행지에서 기적처럼 첫아이가 찾아왔다. 예상치 못했지만,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기쁨만큼 빠르게 현실에 부딪쳤다. 나는 부대에서 중요 보직을 맡고 있어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 아내 역시 부대 업무로 육아휴직을 오래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생후 5개월 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
우리는 군인으로서의 사명과 부모로서 책임 사이에서 매일을 달렸다. 새벽에 아기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맡기고, 밤늦게야 데려와, 자는 얼굴만 바라보는 날도 많았다. 때론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부대 비상상황으로 인해 잠든 아이를 이불에 싸매고 부대로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군인과 부모, 두 역할은 결코 쉬운 조합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옹알이 한 소절이면, 고된 하루도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첫째의 웃음 속에서 우리는 둘째를 꿈꿨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외롭지 않게, 가족이 한 명 더 늘면 지금보다 더 단단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또 다른 굴곡을 안겼다. 아이가 돌을 갓 지난 시점, 나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선발돼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파병을 가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걱정도 컸지만, 한 가지 더 큰 고민이 생겼다. 현지에서 복용해야 하는 말라리아 예방약은 생식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었고, 복용 종료 후 3년간은 임신을 피하라는 권고를 받게 된 것이다. 둘째 임신을 계획한 상황에서 약 복용은 생각지 못한 복병이었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첫째와 둘째의 터울이 세 살, 네 살, 다섯 살... 시간의 벽 앞에서 초조해져 갔다.
파병 전 교육 중, 의무대장이 말했다.
"내일부터 예방접종과 말라리아 약 복용이 시작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본능처럼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내는 내가 교육받는 부대로 찾아왔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
그녀가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훈련장 끝자락의 이름 없는 공터로 향했다. 시간과 장소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군복을 입은 두 사람은, 조용히 인생의 또 따른 전투를 준비했고, 그날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그날, 우리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아이. 그 아이의 태명은, 내가 곧 파병될 부대의 이름에서 따온 '한빛'이었다. 멀리서도 함께 빛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첫째, 그리고 뱃속의 한빛이를 뒤로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아내는 점점 불러오는 배를 안고 부대 임무를 수행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첫째를 안고 씻기고 먹이고 재웠다. 나는 아프리카의 모래바람 속에서 아이 사진을 품고 매일 기도했다.
현지시간 2016년 1월 20일 새벽 4시경, 남수단재건지원단 지휘통제실. 그토록 기다리던 장모님의 전화가 왔다.
"이 서방, 예쁜 공주님이 건강하게 태어났어."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기쁨과 안도, 그리고 미안함. 무전기 밑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울었다. 이 이야기는 MBC 다큐스페셜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우리는 아들, 딸 두 살 터울로 오순도순 살아갔다. 아이들이 함께 장난치고,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는 모습을 보며 '가족이란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다.
사실 셋째는 예정에 없던 깜짝 손님이었다.
"둘도 키웠는데 셋이라고 못 키우겠어?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애국해야지."
아내는 호탕하게 얘기했고, 나는 웃으며 화답했다.
"그래, 사랑은 나누면 커지는 거니까."
그렇게 셋째 딸이 태어났다. 기저귀는 한 번에 몇 박스씩 사야 하고, 밥 달라는 아우성은 삼중창으로 울려 퍼졌다. 첫째는 둘째를 밀고, 둘째는 셋째를 밀며, 셋째는 울고 있는 이유를 몰라 울었다. 거실은 늘 장난감 지뢰밭이었고, 엄마 아빠의 두 손은 만성 인력 부족이었다. 그런데도 웃긴 건, 전쟁 같은 하루 끝에 다 같이 이불에 누우면 그날 하루가 왠지 또 그립게 느껴졌다는 거다. 고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의 밀도는 말할 수 없이 깊어졌다.
어디를 가도 다섯 명. 마트에도, 놀이공원에도, 손을 꼭 잡고 걸을 때면 사람들은 묻는다.
"세 아이예요? 애국자시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덕분에 삶이 더 풍요로워졌어요."
현관문을 열면 뒹굴어 있는 아이들의 신발,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 방에서 숙제하는 첫째, 거울을 보며 아이돌 가수의 댄스를 연습하는 둘째, 그리고 "아빠!" 하며 달려오는 막내.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나는 안정을 느낀다. 사실 아이 셋을 키우는 게 쉽지만은 않다. 수면 부족, 감정 폭발, 양말 실종, 이유 모를 울음 등등... 그런 날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매일같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삶에 큰 의미를 준다. 가끔은 숨이 차고, 가끔은 어질어질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삶이 좋다. 가족이 있음으로,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까.
세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전쟁이다. 군인 출신답게 전투준비 태세는 철저하지만, 출발은 늘 늦어진다. 차 안에서 토할 것 같다는 첫째, 우동 먹고 가자는 둘째, 아이스크림을 외치는 막내. 고속도로 휴게소는 전쟁터 같지만, 그래도 웃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니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펜션, 아이들은 이불 위에서 뛰놀고, 아내는 씻지도 못한 채 저녁을 준비했다. 짐을 정리하던 나는, 해가 지는 창밖에 고요히 머문 가족의 실루엣을 마주했다. 첫째와 둘째는 비눗방울을 불고, 막내는 풀밭에 앉아 들꽃을 바라보고, 아내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풍경은 내 안에 시가 되어 흘러나왔다.
노을이 머문 자리
이운수
저무는 햇살에 인사하듯
두 아이는 아쉬움을 담아 비눗방울 띄우고
막내는 들꽃 앞에 살포시 무릎 꿇고
작은 우주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
아내의 눈동자엔
저녁노을처럼
잔잔한 사랑이 스며든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니 둘째가 "역시 시인 아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저녁엔 고기를 굽고, 마시멜로를 살살 익히며, 불멍 속에 하루의 피로를 녹였다. 그날 밤, 다섯 식구가 이불 세 장 위에 옹기종기 누웠다. 막내는 내 팔베개에 기대 잠들었고, 아내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속으로, 아주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래, 이게 가족이지. 이게 내 전부지."
육아는 마라톤과 같았다. 피곤과 걱정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서,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책임감은 무겁지만, 그 무게는 사랑으로 천천히 녹아들었다.
출산과 양육은 희생이 아니다. 사랑이 자라고, 관계가 깊어지고, 삶이 단단해지는 과정이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것 같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더해주었다. 나는 지금 군복보다 더 단단한 책임감으로 '아빠'라는 이름을 입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묻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를 셋이나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쉽진 않았어요. 그래도, 해볼 만했어요. 정말요."
결혼과 출산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누군가는 그것을 국가의 권고라 하고, 또 사회적 책임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결혼은 '함께 살아갈 사람을 찾은 기쁨'이었고, 출산은 '그 사랑이 모습으로 피어난 기적'이었다. 물론 고단하다. 잠 못 자는 밤도 많고, 울음소리에 귀가 얼얼한 날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내 품에 안겨 "아빠"라고 부를 때, 그 모든 힘듦은 선물로 바뀐다.
다시 말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희생이 아니다. 나를 더 깊이 알게 해주는 경험이고,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흔적이다.
쉽지 않지만,
정말...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