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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Jan 20. 2021

진정한 平和의 시대

다이어트는  항상 내일부터니까

멸치 육수 펄펄 끓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첫째는 떡을 씻어 살짝 불리고 물만두를 꺼내 준비해 둔다. 둘째는 계란 다섯 개를 젓가락으로 휘휘 둘러가며 풀다가 소금을 왕창 넣는 바람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노란 지단을 완벽히 뒤집어 실수를 만회했고 김도 가위로 가지런히 잘랐다. 송송 파 썰리는 그 경쾌한 모습에 엄마 내공이 느껴진다. 사위는 거실을 정리하고 꺼내 온 상을 펴고 닦는다. 아빠는 이 분주함 속에서도 ‘자연인’에 푹 빠지셨다. 아이들은 수저를 챙기고 김치를 나른다. 소금을 더 넣을까 말까, 돌아가며 맛보다가 국물이 다 닳을 것 같다. 불을 끄고 떡만둣국을 한 그릇 담으려는데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어, 셋째다! 딱 맞춰 왔네. 잘 됐다 어서 밥 같이 먹자”

토요일 저녁 7시 30분, 우리 집 식구 아홉 명의 조금 늦은 저녁식사다.    

   

첫째는 아이 둘과 함께 엄마, 아빠와 산다. 살림은 엄마에게 당당히 맡기는 큰 딸이다. 둘째는 결혼 8년 차에 30년 산 이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 염치없는 딸이다. 양산서 일하는 셋째는 평일엔 기숙사 생활, 주말엔 집으로 돌아온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이틀을 지내다 간다. 밥 먹을 때만 나오면서 그 먼 길을 왜 꾸역꾸역 오는지 모르겠다. 눈치 없는 아들이다. 설날 풍경도 가족 모임이 있는 날도 아니다. 주말 우리 식구들의 일상적 모습이다. 우리는 이렇게 40여 년이 넘도록 ‘한솥밥’을 먹고 있다.   

  

평화(平和)는 쌀(米)을 고루 나누어 (平) 먹는 (口)것이라 신영복 선생님이 말하셨으나, 어릴 적 우리 집 식탁에선 큰 소리가 자주 오갔다. 첫째, 둘째, 셋째가 먹는 것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이다. 상차림이 부족한 집이 아니었음에도 ‘스피드가 경쟁력이다.’는 말은 우리 집 밥상 앞에서 언제나 진리였다. 마지막 소시지 한 점을 먼저 선점한 첫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뺏긴 것이 억울한 둘째는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 입 베어 물어 내 것이라 안심하고 있던 첫째의 먹잇감을 낚아채 자기 입으로 쏙 넣어 버리는 순간은 셋째가 유일하게 날렵 해지는 때였다. 자식들 먹는 것을 무척 흐뭇해하셨던 엄마도 둘째, 셋째의 비만도가 남달라 지자 ‘밥은 한 그릇만‘을 외치며 구조조정에 들어가셨다. 시위대는 ‘딱 한 숟가락만’을 외치며 격렬히 저항했다. 삼국지가 따로 없던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콩 심은 데 팥 나지 않듯 남 보다 두 배 더 밀어 넣은 흰쌀밥은 남들보다 몸을 두 배로 부풀려주었다. 삼십 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세 남매의 눈물겨운 다이어트 역사가 서막을 열고 있었다. 처음엔 태권도, 에어로빅 같은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했다. 셋이서 다 같이 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한 수영이 4~5학년 즈음되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수영은 하지 않고 수영장 바로 옆에 있던 햄버거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평소 각자 겁쟁이들이었음에도 셋이라 무서울 게 없었다.  

    

샤워만 한 후 돌아와서는 운동해서 배고프다고 밥을 한 그릇 뚝딱했다. 그 사실을 엄마에게 들킨 날 셋이서 한 방에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엄마의 열을 올렸다. 그 후 엄마는 더욱 가혹해지셨다. 식초에 콩을 절여 한 숟가락씩 먹게 하셨고 물은 녹차만 타 주셨다. 현미와 콩, 조등을 섞은 시커먼 밥을 짓기 시작하셨다. 인터넷도 없던 그 시기에 어디서 그런 정보들을 듣고 오시는지.   

   

둘째가 최고 몸무게를 연일 갱신하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방학식날 집에 가니 싸 놓은 짐가방이 있었다. 그것을 들고 엄마가 둘째를 데리고 간 곳은 송도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 좋은 단식원이었다. 물과 약과 포카리스웨트만이 둘째의 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이 곳에서 나가면 뭐부터 먹을까만 생각한 일주일이었다. 테트리스에 한창 빠졌을 때 자려고 누우면 그 특유의 음악과 함께 끊임없이 블록들이 떨어져 내리곤 했었다. 꿈에서 떡볶이, 피자, 햄버거가  테트리스 음악에 맞춰 끊임없이 떨어졌다.


첫째는 예쁘다는 말을 원체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 지금도 고3인 딸이 있다면 다들 다시 돌아볼 정도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며 자신이 살찌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타고난 비만인 두 동생들 덕분에 정상 범위에 있어 엄마의 잔소리 대상에서 빗겨서 있었지만 스스로 다이어트를 숙제라 여겼다.      

“요즘은 애들도 예쁜 선생님 좋아해. 먹고살려면 자기를 꾸며야 된다고. 며칠 전에 새 운동 기구 샀는데 한 번 해봐. 이번엔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하자.”

첫째는 기구는 일단 사고 보며 운동도 일단 등록부터 하고 보는 행동파다. 재빠른 행동은 딱 거기까지다. 헬스장 주인에게 전생에 빚이 있었던가보다.


둘째는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심하게 가슴이 뛰었다. 그 말에 반해 결혼도 했다. 35년 만에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처음 한 소개팅이었다. 인터넷 빅사이즈 옷이 아닌 직접 옷을 입어보며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살을 더 빼지 않더라도 절대 다시 찌고 싶지는 않아 저울 눈금에 울고 웃는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독자적인 삶의 방식이 있대. 지혜로운 이는 비교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대.”

듣고 싶은 말만 들린다더니. 부처님 말씀을 위로 삼아 자만했다가 일 년 사이 6킬로가 늘었다. 걱정이 태산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제 한 끼만 굶어도 손이 떨린다는 거다. 살기 위해 굶어야 하는지, 먹어야 하는지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첫째를 따라 덜컹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했다. 1년 회원권이 많이 싸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둘째도 전생에 빚이 있었던가보다.


셋째는 예뻤다. 용두산 공원 꽃시계 앞에서 찍은 40년 전 사진 속에서는 꽃시계보다 예쁜 꽃미남이었다. 아무도 못 건드릴 것 같은 비주얼에 엄마의 성화로 어릴 때부터 태권도, 유도 등의 기본기를 탄탄히 익혔다. 고등학교 시절, 잘 나가던 일진 친구와 장난으로 엎어치기 하는 모습이 발 없는 말에 실려 퍼져 나갔다. 그 후 삼 년 동안 일진 아닌 일진으로 편안히 살았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덩치만큼이나 마음 품도 넉넉하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비만에 너그럽다.  

“내 살 빼려면 회사 그만둬야 된다. 그냥 빠질 살이 아니다.”

여자 셋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듣는 내공을 잘 살리면 독하게 살 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정 나에겐 비만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것 같다.


살 빼라는 엄마의 눈을 피해 첫째가 밥솥과 깻잎을 몰래 들고 오면 방에서 문을 잠그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기름칠 해 구운 엄마표 김은 밥도둑이었고 10장을 구우면 한 자리에서 다 사라졌다. 단체 손님 주문 들어온 듯 산처럼 쌓아 올린 김밥을 하루 종일 먹었다.

 엄마 역시 어깨 으쓱해지도록 도시락 반찬을 정성스레 싸주셨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면 도넛이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와 향기로 우리는 환희로웠다. 지금도 여전히 ‘자식들 살을 내가 다 찌웠다, 셋째 살 만 빼면 소원이 없겠다.’ 하시면서도 식구들이 모인 밤이면 새벽에도 김치전을 부치신다. 살도 먹으면서 빼야 되는 거라나.   

  

한 그릇 씩 다 돌아가고 난 떡만둣국은 제법 양이 많이 남았다. 다른 식구들은 더 먹으라는 말에 겁을 먹는다. 더 먹지 마라 하면 겁을 먹던 우리와 태생이 다른 부류다.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손을 대지 않는 그 능력이 놀라웠다. 결국 남은 떡만둣국은 첫째, 둘째, 셋째 차지다. 눌어붙은 떡이 더 맛있는 법인데, 하며 첫째가 냄비를 통째로 상 위에 올린다. 둘째는 이제 그만 먹어야 되는데 하며 숟가락은 본능을 따라 냄비로 향한다. 셋째는 말이 없다. 그냥 먹을 뿐.         

  

“그래서 우리 다이어트 언제부터 어떻게 할 건데?”

“일단 내일부터 하자. 계획은 좀 있다 짜고.”

“내일은 일요일인데, 그냥 월요일부터 하자.”

“그래 그래, 그러면 내일이 마지막 날인데, 우리 내일 뭐 먹을까?”

“세 끼 다 맛있는 거 먹자. 월요일 되면 못 먹을 테니까.”

“엄마 내일 뭐 맛있는 거 해 줄 건데?”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삼 남매의 다이어트 역사다.  그렇게 나이도 먹고 추억도 남겼다.

치열한 삼국시대는 세월이 흘러가며 자연스레 통일 시대를 맞았다. 진정한 평화(平和)의 시대다. 평생의 양식, 식구(食口)가 있어 배가 부르다. 살찔 걱정은 잠시 덮어 두자. 다이어트는 항상 내일부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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