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오늘도 해브 어 나이스 데이

C의 새로운 출발에 건배를 - 정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며

by 조승희

C를 처음 만나지도 벌써 10여 년이 되어 간다. 어학원 강사로 만난 언니 지인의 모임에 초대된 나는 C와 나이가 같아서인지 이야기가 잘 통했다. 우리는 빨리 의기투합했다. 20대부터 외국 생활을 많이 했던 C는 성에 대해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도 남다른 친구였다. C의 새로운 남자 친구 이야기를 듣는 것은 평소 눈물 많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도 잘 받는 이 여린 영혼과 어울리지 않는 딴 사람 이야기 같이 낯설기도 했다.


“나는 한국인들이 좀 고리타분해 보여.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한국인들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살아온 과거와 사랑의 상처 등 깊은 속내도 털어놓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호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 했다.


그때는 솔직히 ‘사는 곳이 똑같지 않나, 그곳이라고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이곳도 저곳도 부대끼고 살면 피곤한 건 똑같을 텐데. 이곳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에도 늦은 나이인데, 먼 곳에서 다시 공부랑 일을 하겠다니.’ 현명하지 못한 생각인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한 편으로는 C가 멋있어 보였다. 모아 둔 돈도 없이 단란한 부모님이 있는 보금자리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내 몫까지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주길 기대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처음 만난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문학시간이었다. 그때는 부모님 그늘 밑에서 지내느라 ‘가난’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잃어본 적이 없던 철부지였다. 그럼에도 이 시의 서정적 문체 덕분이었는지 처음 읽을 때에도 가슴속에 돌멩이 하나가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에서 사회인으로, 삶을 몸으로 겪는 동안 때때로 이 시가 떠오르곤 하는 때면 여지없이 씁쓸했다.


정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는 동안 나는 C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어진지 30년이 지난 이 시가 지금도 절실히 와 닿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나 편견으로 인하여 인간적인 존엄마저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사회인 것인가. 주인공인 계나처럼 젊은이들이 눈물의 피를 흘리며 국경을 넘게 만드는 행복 난민이 되도록 내모는 것인가.


삼시 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는 나이 드신 어르신의 가르침이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과연 만족할 줄 모르는 개인의 욕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아프리카 난민보다는 우리가 낫잖아 하는 위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교와 철학에 의지한 정신적 만족감은 일반 대중에게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이상적인 해결책이다. 나의 힘도 사회의 역량도 부족해서 행복감은 도무지 충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미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영위해 나갈 것인가. 이런 정답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되는 것은 참 난감한 일이다.


처음엔 한국이 싫어서였지만 후에는 자신의 행복을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나라를 찾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감내하며 힘들게 떠나온 계나가 있다. 떠나기까지도 힘들었지만 떠나온 곳도 낙원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서부터 인종차별, 뿌리 깊게 박혀 버려지지 않는 서열화와 계급의식, 시기와 질투, 사랑과 배신까지 사람들 모여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쉬고 싶을 때는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곳, 병원비랑 노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일을 해도 자존심 지키며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곳, 한 달에 한 번 데이트를 하고 돈 걱정 안 하고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곳, 서로 몰래 볏짚을 나르느라 몸뿐 아니라 마음이 멀어지는 그런 곳이 아닌 곳이기도 하다. 지금 계나가 느끼는 한국은 이런 당연한 누림이 더 비현실적인 핑크빛 꿈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민은 내가 살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지 국가를 버리는 거창한 결심을 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두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의 시작을 결행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을 각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떠밀려가는 젊은이를 보는 마음은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패하고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계나는 그곳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제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을 찾아서라고 당당히 말한다.


꿈을 좇아 바쁘게 살아가는 계나의 동생도, 한국에서 좀 더 해보겠다는 계나의 남자 친구도, 시어머니와 회사 욕을 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나의 친구들도, 다 나의 모습이었다. 각각의 행복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계나의 말에서 ‘그래도 내 선택이 더 옳아.’하는 치기가 느껴진다. 그런 계나가 얄밉지 않고 좋다. 그래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직설적인 제목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시작된 독서였지만 남자 작가임을 잊게 만드는 여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일화와 심리 묘사에 하품 한 번 하지 않고 책을 덮었다.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는 한국 사회와 인간에 대한 냉철한 비판정신 앞에서는 오히려 외국에 나간 애국자라도 되는 듯 한국을 옹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평소엔 거침없이 나라 욕 하다가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는 무턱대고 대한민국을 응원하게 되는 그 무의식적인 편들기에 스스로 섬뜩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쉼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불쑥불쑥 거부감이 드는 것은 나도 이제는 책임을 어른들에게만 떠넘길 수 없는 나이로 접어들고 있음을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제 나라의 잘못은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 아니라 나의 무관심도 한 몫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친구 C가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며 소식을 알려왔다. C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14년도이니 7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출산과 육아, 일 등으로 바빴고 C도 일자리, 학교 등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며 타향살이에 적응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연락하는 횟수도 자연스레 줄었다. 한 번 씩 SNS 사진 속에서 만나는 C는 짧은 치마를 입고 머리는 파마를 하여 늘어뜨리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웃고 있는 그 날씬한 그 모습은 여자인 나도 반할 것 같이 매력적이다. 그녀에게만 세월이 좀 천천히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파랑새 이야기에 혹했다가도 금방 푼돈에, 자잘한 인간관계에, 나의 자유를 팔아넘기는 현실을 살고 있다. 이제 확신한 대로 실천만 하면 되는 계나가 인생의 숙제를 먼저 해결한 선배같이 느껴진다. 불혹이 훌쩍 넘어가는 나이에도 흔들리는 나의 북극성. 미래가 불안하지 않을 날은 없다. 그 불확실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작은 것에도 크게 기뻐하며 우리 아이들의 미소에 다시 화답하는 힘을 갖는 것. 그것뿐이다.


C의 새로운 출발에 건배를,

“ 자 그럼 오늘도 해브 어 나이스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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