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컨스터블 형 인간인가요, 터너 형 인간인가요?

[다시, 그림이다][사진관집 이층]을 읽으며

by 조승희

풍경화를 좋아합니다.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도 좋고 강요배의 ‘마파람’에도 눈길이 갑니다. 카스파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수도사’처럼 거대한 자연과 왜소한 인간이란 테마를 다루는 작품은 장르 불문 매혹되고 맙니다.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도 그렇습니다.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폭풍우 치는 날, 배에 자신을 묶어두었다는 일화를 듣고서 열 손가락 순위에 들여놓았습니다. 숭고미가 느껴지는 낭만주의풍의 풍경화에는 왜 이리 마음이 쉽게 열려버리는 것일까요?


얼마 전 데이비드 호크니의 월드게이트 숲 연작 풍경화에 반하여 책 한 권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의 프롤로그 부분은 호크니가 한 손님에게 받은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 당신은 존 컨스터블 형 인간인가요, 아니면 윌리엄 터너 형 인간인가요?”

그 뜬금없는 질문은 나를 향했고 대답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프롤로그에서 멈춘 책장이 다시 넘어가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신경림


이것이 어머니가 서른 해 동안 서울 살면서 오간 길이다.

약방을 들러 소화제를 사고

떡집을 지나가다 잠깐 다리 쉼을 하고

동향인 언덕바지 방앗간 주인과 고향 소식을 주고받다가,

마지막엔 동태만을 파는 좌판 할머니한테 들른다.

그이 아들은 어머니의 손자와 친구여서

둘은 서로 아들 자랑 손자 자랑도 하고 험담도 하고

그러다 보면 한나절이 가고,

동태 두어 마리 사들고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

어머니의 하루는 저물었다.

강남에 사는 딸과 아들한테 한번 가는 길이 없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오가면서도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듣고 보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더 멀리 갈 일이 무엇이냐는 것일 텐데.


그 길보다 백배 천배는 더 먼,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그 고향 뒷산에 가서 묻혔다.

집에서 언덕 밭까지 다니던 길이 내려다보이는 곳,

마을길을 지나 신작로를 질러 개울을 건너 언덕 밭까지,

꽃도 구경하고 새소리도 듣고 물고기도 들여다보면서

고향 살이 서른 해 동안 어머니는 오직 이 길만을 오갔다.

등 너머 사는 동생한테서

놀러 오라고 간곡한 기별이 와도 가지 않았다.

이 길만 오가면서도 어머니는 아름다운 것,

신기한 것 지천으로 보았을 게다.


어려서부터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미군 부대를 따라 떠돌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먼 지방을 헤매기도 하면서,

어머니가 본 것 수천 배 수만 배를 보면서,

나는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것을 보는 것을 죄스러워했다.

하지만 일흔이 훨씬 넘어

어머니가 다니던 그 길을 걸으면서,

마을길도 신작로도 개울도 없어진

고향집에서 언덕 밭까지의 길을 내려다보면서,

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끼예프에서

내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어쩌면 어머니가 보고 갔다는 걸 비로소 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서른 해 동안 어머니가 오간 길은 이것뿐이지만.




나만의 답을 정리해보려던 차에 떠오른 것은 신경림의 시집 ‘사진관집 이층’이었습니다. 작가의 11번째 시집으로 2014년도 1월에 발간되었으니 세상에 나온 지 벌써 몇 년이 흐른 책입니다. 신경림 작가의 대표작인 [농무]나 [갈대] [가난한 사랑 노래] 같은 시에서 보여주던 울분 등이 차분히 가라앉아 정제된 느낌을 줍니다. 연륜이 묻어나는 시들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며 내려놓게 되는 것, 깨달은 것,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 등을 노래한 시집이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이런 주제의식을 잘 보여주면서도 쉬운 시어로 쓰여 마음을 단 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제 나이도 어느새 사십이 훌쩍 넘었듯 어릴 때 만난 시인도 여든의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름 문학소녀였던 저는 친구들과 글쓰기 놀이를 종종 하곤 했습니다. 주제를 정해놓고 자유롭게 쓴 후 바꿔가며 읽곤 했습니다. 그때 평생 오락가락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인생의 화두 하나를 만났습니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계장터 중


‘떠남과 머무름’, '거칠고 격동적인 인생과 예측 가능한 인생'. 제가 신경림의 ‘목계 장터’라는 시에서 발견했던 그 화두를 시인도 평생 가지고 살아왔구나 싶었습니다. 젊은 날 박물장수의 운명을 자처했던 시인은 나이 들어 평생 길음 시장만 오가신 어머니의 삶에도 경외를 표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방식대로 살 수 없었다는 것도 받아들입니다. 저도 떠남에 심하게 매료되던 젊은 시절을 지나 내가 가꾸는 일상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삶에 무언가 근사한 것이 있을 것만 같은 이 미련을 저는 여든이 되어서도 내려놓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컨스터블은 윌리엄 터너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영국의 풍경화가입니다. 터너가 해외로 그림 여행을 하며 대담한 혁신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려고 했던 화가였다면 컨스터블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반복해서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일하는 농부들, 아담한 농가, 푸른 초원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뭉게 뭉게 구름들. 그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농촌 분위기의 일상, 정말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할 만한 풍경을 화폭에 그려 보입니다.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는 존 컨스터블을 가식적인 포즈나 허세가 전혀 없는 철저한 성실성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린 화가라 평했습니다. 컨스터블의 작품은 지천으로 핀 들꽃같이 소박한 삶도 뛰어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다정하게 말하는 듯합니다.


"어느 하루도 서로 같은 날이 없고, 단 한 시간도 서로 같은 시간이 없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한 나무의 두 잎사귀도 같아 본 적이 없다." 고 했던 존 컨스터블과 "이 길만 오가면서도 아름다운 것 , 신기한 것 지천으로 보았을" 어머니의 하루를 상상해 봅니다. 새로운 것 보기에 몰두하느라 새롭게 보지 못하는 하루가 다반사입니다. 무엇으로 살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은 비단 나이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컨스터블의 하늘 가득 찬 구름을 보거나 신경림의 시들을 통해 ' 참 좋구나.' 하는 것을 느껴갈 따름입니다.

호크니는 매 순간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같은 장소에서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진실'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인도 일흔이 훨씬 넘어서 어머니가 평생 오가던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걷습니다. 저도 요즘에는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에도 눈이 제법 오래 머뭅니다. 그러면서 꿈꿉니다. 호크니와 컨스터블의 대형 풍경화를 실제로 보고 싶다고. 우리들의 시골 풍경과 다를 게 없다 하여도 그들의 고향인 영국 요크셔 땅도 언젠가 밟아보고 싶다고. 바람이 부드럽게 솔솔 불어 마음을 간질간질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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