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건축가의 책들을 읽으며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보라. 그 지도 속 우리의 땅은 산과 계곡이 분명하여 물길과 양지바른 터가 아름다운 무늬처럼 새겨져 있는 곳이다. 이 터에 새겨진 무늬가 바로 '터무니'이니, 이 단어는 우리의 존재와 이유가 모두 터에 있다고 믿은 우리 선조의 관념어이다.
어쩌면 땅은 그 스스로 어떤 건축이 되고 싶은지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믿기로는 모름지기 좋은 건축가, 좋은 도시계획가는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이며 좋은 건축, 좋은 도시란 그 터가 가진 무늬에 새로운 무늬를 덧대어 지난 시절의 무늬와 함께 그 결이 더욱 깊어 가는 곳일 게다. 그게 터무니 있는 건축이며 그러함으로 터무니 있는 삶이 생겨난다.
보이지 않는 도시, 움직이는 건축
건축설계라는 것은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공학은 그 공간의 조직이 실현되도록 뒷받침하는 기술이며, 예술로 보는 것은 그 공간을 감싼 겉가죽을 조형물로 느낀 결과라 이 모두가 건축의 부분적 속성일 따름이지 건축의 본질은 아니다.
-오래된.것들은.다.아름답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우리 삶을 영위하는 내부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며 따라서 그 공간이 보다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불행하게도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니어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가 어떤 건축에서 감동을 느낀다면 그것은 거의 다 그 건축 속에 빛이 내려앉아 빚어진 공간의 특별함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간은 보이지 않는 까닭에 남에게 그 감동적 건축을 설명할 때면 대게 천장의 모양이나 벽과 바닥의 장식 등을 이야기할 뿐이어서 이를 듣는 순간 공간은 사라지고 건축은 잘못 설명되고 만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여행이 우리의 삶에 유효한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의 입장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타자화된 이방인은 싫든 좋든 현실에서 비켜서서 그 현실을 끊임없이 비교와 평가를 통해 저울질하며 스스로를 사유의 세계로 모는 자이다.
그 결과로 여행은 우리를 종파주의와 그릇된 편견과 헛된 애국심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은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더없이 풍요롭게 보인다.
건축을 하는 한 나는 늘 여행길에 있을 것이다. 그 길 위에서 환상과 실체 사이에 있는 간극의 크기를 항상 절감할 것이며 그로써 이방인이 된 즐거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여행이 주는 이 매력은 치명적이며 따라서 내 평생 결단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