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애살수(懸崖撒手) / 팀 아이텔 / 보트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이 노래는 조용필 씨가 82년도에 발표해 10주 동안이나 가요톱텐 1위를 기록했던 노래다. 펑키한 리듬에 단순한 가사가 반복되어 한 번 들으면 묘하게 하루 종일 흥얼거리게 된다. 진짜인지 모르지만 이 곡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알고 있다. 대마초 사건으로 방황하던 가수 조용필 씨가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스님을 친견했다.
“뭐하는 놈인고?”
“가수입니다.”
노래 한 소절을 시킨 후 경봉스님이 말씀하셨다.
"니 안에 꾀꼬리가 들었네. 니 안에서 노래하는 꾀꼬리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그걸 찾아보거라.”
그 화두를 받고 소나무 숲길을 내려오는데 도무지 꾀꼬리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을 담아 만든 노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노래였고 대히트를 친 명반으로 기록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찾아야만 하는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멈추어 섰을 때 나는 이 노래가 문득 떠오르곤 했다. 못 찾겠다고 그냥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어찌도 그리 잘 알아주는지, 헤매고 다니는 게 나만은 아니구나 하는 위안도 받았다. 경봉스님의 말씀이 내면의 진정한 자기를 찾아보라는 말씀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나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꾀꼬리를 더 소리 높여 애타게 찾게 된다.
남편은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서 공부하고 직장을 다녔다. 김해에 새로 회사를 세우니 와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고향을 떠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작은 공장이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다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차츰 월급도 많아지고 주말도 쉴 수 있는 날이 늘어났다. 일이 잘 풀려 직원은 계속 늘어났고 대출을 받아 부지를 넓히고 설비도 새로 들였다. 사장님은 당시 40대의 젊은 분으로 우리가 처음 데이트할 때 용돈까지 챙겨주시고 결혼할 때도, 아이가 생겼을 때도 마음을 넉넉히 내어주는 형님 같은 분이셨다. 술을 잘 못 드셔서 회식을 해도 길게 흥청망청 늘어지는 일이 없고 말도 점잖게 하셨다. 흔히 떠오르는 말 잘하고 넉살 좋은 그런 사장님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진 것은 오히려 새 부지를 사서 공장을 넓히고 난 후부터였다. 주거래처가 중국 공장과 거래를 시작해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격도 좋고 물건의 질까지 좋은 중국 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한 둘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일감이 많으면 다 해내지 못하고 일감이 없으면 월급이 나오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 경력을 인정 받을만한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 40대 중반에 이직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빚은 많고 창업 자금은 없고. 아... 못 찾겠다 꾀꼬리, 노래만 불렀다. 믿고 의지하던 사장님인데 대신 무슨 결판을 내주겠지, 우리를 이대로 놔두겠어하고 결단을 타인에게 미뤘다. '에라이 모르겠다, 꾀꼬리 같은 거 그만 찾자' 하며 노를 놓고 배를 방치했다. 그러다 점차 우리가 탄 배는 물살에 조금씩 떠밀려 그림 속 배처럼 절벽 앞에 다다랐다.
팀 아이텔의 <보트>라는 그림을 보면 금세 비가 쏟아질 듯 우중충한데 나무 막대기를 노삼아 저으며 작은 보트에 의지해 물 위에 떠 있는 부부가 보인다. 배는 낭떨어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지금 방향을 바꾸거나 배를 돌리지 않으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위태위태하다. 쫓겨온 길이라 돌아갈 수 없고 양쪽 모두 막혀있다. 부부는 어떤 심정일까? 앞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표정도 읽을 수 없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아무리 외쳐본들 길을 알려줄 스승은커녕 메아리도 들려올까 싶은 적막한 분위기다. 물이 얕아 죽지 않기를 바라거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비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림의 두 사람이 마치 우리 부부같았다. 꾀꼬리를 찾으려 선인들의 말을 뒤졌다. 매서운 바람에 북방 고원까지 쫓겨 온 이육사는 시 '절정'에서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고 읊었고 송나라 야보선사는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라'고 읊었다. 한 발 디딜 곳도 없는데 당장 적이 쫓아오는데 어떻게 눈을 감습니까? 겨울은 겨울이지 어떻게 무지개를 떠올립니까? 놓아버리면 떨어져 죽을 텐데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씀하시는군요. 뭐 이런 저항감이 없지는 않았다. 내 고집대로 할거면 선인을 말씀을 뒤질 필요가 없겠다싶어 다시 천천히 의미를 따져보았다.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다'는 구절은 야부선사의 선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고 결단력 있게 행하라는 뜻이다. 이 가르침을 김구 선생님 역시 좌우명으로 삼고 낭떠러지에 매달린 원숭이 그림을 벽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선인들의 시에 힘입어 찬찬히 그림을 다시 본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까마득한 하늘이 아니라 흰색 벽인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니 막힌 벽이라 생각했던 양쪽 회색 벽이 건물의 통로처럼 보인다. 후진하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배의 머리를 돌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앞 쪽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눈이 머문다. 흰색 계통의 옷을 입은 데다 앞쪽에 있기에 뒷사람보다 조금 왜소하게 그려져 있다. 여인인가 싶었는데 둘 다 두건을 쓰고 있어 성별을 알아보기 힘들다. 몸을 노의 방향 쪽으로 비튼 것을 보니 둘 다 노를 허투루 잡고 있지도 않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나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떠돌던 베트남 보트 피플 사진이 떠올랐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차림새가 허름하지 않아 부유한 나라에 들이닥친 난데없는 재앙인가 싶기도 했다. 빈곤과 박해, 테러, 자연재해, 하물며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 전쟁까지 막다른 절벽에 설 때가 얼마나 많은지, 개인의 힘으로 이겨내기 벅찬 매서운 바람이 어디까지 인간을 내몰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배가 떠밀려서 멈춰선 곳은 테러나 자연재해같이 감당하기 벅찬 에베레스트의 절벽은 아니다. 뒷산 둔덕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보면 높은 절벽이 아니란 걸 알지만 머리와 다르게 마음은 두려웠다.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눈앞이 깜깜했다. 답답한 마음에 불자를 자처하면서도 용한 점쟁이를 찾기도 했으나 물어도 뾰족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꾀꼬리는 내 안에 있기에 누가 대신 찾아줄 수 없다. 뛰어내리든 떠밀려 떨어지든 가로막힌 벽 사이로 정말 길이 있을지 방향을 틀어 확인을 하든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기에 어떤 결정도 두렵다. 벼랑에 서게 된 책임이 너에게 더 많이 있다고 원망하고픈 어리석은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혼자가 아니라 안심되고 옆에 있어줄 수 있어 더 다행이란 마음이 훨씬 크다. 잠시 쉬며 길을 찾게, 무릎 꿇고 무지개를 그려보게 내가 노를 좀 더 단단히 잡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떠밀리듯 나아가는 한 발이지만 또 그렇게 떠밀리지 않았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스물다섯에 첫 차를 샀다. 버스로 한 시간 반 넘게 걸리는 곳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막차 시간이 빨라져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일주일 연수를 받았지만 겁이 많았던 나는 깜깜한 밤에 혼자 운전해서 집에 돌아올 일이 악몽같이 무서웠다. 갈 때 차를 타고 가면 올 때 차를 두고 올 수 없기에 일부러 낮에 용기를 내어 운전대 앞에 앉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돌아올 때도 타고 오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 진땀을 뺐더니 운전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때 이후 그 차를 타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평생 운전을 배우지 않았을지 모른다. 혼자 차 안에서 벌이는 고성방가의 즐거움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현애살수(懸崖撒手),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어볼까. '높으면 높을수록 더 큰 비상이, 더 큰 자유가 있더구나.' 훗날 말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得樹攀枝未足奇 득수반지미족기
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水寒夜冷魚難覓 수한야랭어난멱
留得空船載月歸 유득공선재월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는 건 기특할 게 못되니
깎아지른 절벽에서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네.
싸늘한 밤, 물도 찬데 고기는 낚이지 않아
빈 배에 달빛만 담아 싣고 돌아오누나.
<금강경오가해>의 야보(冶父) 송(頌)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