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을 잔뜩 싣고 흘러가는 조각배 하나가 있다. 배 위에는 실루엣으로만 남은 왜소한 사람이 커다란 먹구름 덩어리에 자리를 내주고 끝으로 내몰렸다. 한 점의 바람, 한 번의 파도에도 금세 꼬꾸라질 듯 위태롭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자기보다 몇 배는 더 큰 먹구름을 싣고 어디로 가는 걸까? '슬픔은 짐이 무거운 자의 것'이란 말이 떠오르는 그림이다. 가만 들여다보니 손은 무심히 호주머니에 넣은 듯하고표정은 사라지고 없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서 있게 만든 걸까. 그가 실은 이 짐을 나도 잘 알 것 같다. 그것은 걱정, 근심, 염려 덩어리들, 번뇌 종합세트이다. 그는 이 무거운 쓰레기들을 처리할 해우소를 찾고 있는 것일까.
나 역시 많은 먹구름을 등에 지고 다녔다. '걱정도 팔자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번 시험에 점수가 내려가면 어떡하지?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면 혼날 텐데' 같은 생활 밀착형 걱정. '날도 추운데 저 할머니가 나물을 빨리 파시고 들어가야 할 텐데, 내가 이 선물을 주면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같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형 걱정. 그뿐인가.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면, 남편이 다치면, 우리 아이들에게 고난이 찾아오면 어쩌지? 부모님이 아프시면 안되는데.' 같은 미래 대비형 걱정. 잠깐 머물다가는 가벼운 걱정들을 밥 먹듯 했다.
'미리 걱정한 일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생긴 묘한 미신을 믿었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면 그 일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데 '괜찮을 거야' 하고 마음 놓고 있는 일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걱정은 징크스처럼 뇌에 새겨졌고 마음의 습관이 되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의 부정적 결과를 일부러 예상해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실패에 대비했다. 일 잘하는 번뇌 공장 공장장이 보험 들어 놓듯 미리 근심 기계를 쉼없이 돌렸다. 혹여나 하는 미래의 불안으로 지금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작은 구름 덩어리에 불과했고 빠르게 몸집을 불리지는 않았다.
'아, 이 말은 하지 말 걸.' '아,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너보다 내가 더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누군가의 생각을 부정했을 때, 내 감정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약자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를 눈빛을 마구 쏘아 보냈을 때,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는 눈사람처럼 먹구름은 조금씩 커졌다. '기분이 나빴으려나, 나를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밤에 누워 그날 일을 되새김질하다 잠이 들었다. 눈사람 만드는 일은 그다지 급한 일은 아니라 그런가 다음 날 설거지를 하다가 불쑥, 그 다음날 차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나곤 했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미안하다고 할까, 아니야 아마 기억도 못할 거야, 지금 와서 너무 뜬금없잖아.' 하며 눈덩이 굴리기를 멈추고 소처럼 몇 번이나 되새김질하던 생각들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러나 솜사탕 부풀듯 먹구름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몸집을 불리는 때도 있었다. 가만 서 있는데 새가 내 어깨 위에 똥을 싸고 달아날 때처럼 황당한 일도 있고 모르는 사람이 와서 내 뺨을 세게 치고 가는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억울한 일도 있다.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일도 살다 보면 몇 번은 있는데 그때는 억울해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 일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먹구름은 순식간에 커진다. 누가 번뇌를 백팔 개라 했던가. 일만 팔천 개의 번뇌가 내 작은 배에서 주인처럼 안방을 차지하고 저 그림의 사람처럼 한쪽으로 나를 내몰았다.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먼 여정을 떠나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 가르침을 청하는 이들이 있기에 며칠 머물며 설법을 해 주었다고 한다. 고마웠던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이 떠나는 날 답례로 여러 가지 선물들을 준비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한 일이 없다며 극구 선물을 사양하시고 웃으며 마을을 떠나셨다. 고개를 넘어 다른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하룻밤 신세를 질 수 있겠느냐고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했으나 '삿된 가르침을 전하며 빌어먹는 중들을 우리 마을에 머물게 할 수 없소. 썩 꺼지시오' 하며 돌을 던지고 매몰차게 내쫓았다. 그러나 부처님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시고 가던 길을 계속 가셨다. 한 제자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억울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니 부처님은 '선물도 받지 않고 지나왔는데 하물며 쓰레기를 받겠느냐.' 하며 온화한 표정을 지으셨다고 한다.
내가 은사스님에게 처음 들은 뒤 '쓰레기 법문'이라 이름 붙이고 번뇌가 일어날 때마다 꺼내 보는 이야기다. 쓰레기를 단 번에 받아 들고 시시때때로 들추며 냄새를 맡으며 살아온 나에게 그 가르침은 단순한 지혜의 말이 아니라 생활의 질을 한껏 높여주는 식기세척기 같은 실용적인 조언으로 다가왔다. 뒤적거리면 뒤적거릴수록 더 고약해지는 게 똥과 쓰레기라고 하는데 싫다 싫다 하면서도 남이 준 쓰레기를 내 방안에 잘도 보관하고 살았다 싶어 어리석음에 몸이 떨렸다. 정작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건 신이 쏜 첫 번째 화살이 아니라 '아니 어떻게 나한테 쓰레기를 줄 수가 있어.' 하는 내가 쏘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이었다.
걱정은 '갉아먹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내 이가 다 닳을 정도로 씹고 씹어서는 안 된다. 염려는 '호랑이를 만날까 두려워하다'는 뜻이 담겨있다는데 사고가 날까 봐 비행기를 타지 못 할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번뇌의 실체는 막연한 불안함이 20, 타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나 혼자 끙끙대고 들고 있었던 경우가 60, 두 번째 화살에 의한 것이 15 정도였다. 솜사탕이 커 보여도 입에 넣으면 한 입 거리도 못되고 한 바가지 물로도 큰 구름의 거품은 쉬 꺼진다. 상처는 손을 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아물기 마련이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평생 무거운 몸으로 살다 가벼운 몸의 날렵함을 경험했을 때 많이 기뻤다. 그 가벼운 느낌을 기억하기에 자꾸 버리고 싶어 진다. '이 망망대해에 빠져 죽을지도 몰라'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배를 뒤집어 버리자 그 큰 먹구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바다에 빠져 죽지도 않았다. 시원하기만 할 뿐이었다. 깨달으면 더이상 번뇌에 휩싸이지 않을 것처럼 날아오르던 그 기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해졌다. 도는 깨닫는 순간이, 마지막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라더니 시시 때때로 먹구름은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가벼움의 환희를 알기에 더 이상 쌓아두고 있는 게 마음이 불편했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사라져 버리길 기다리지 않고 버려버리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아파트 주차장 대공사로 주차장 사용이 원활하지 못했다. 원래 이중주차, 삼중주차까지 해야 해서 주민들끼리 다툼이 종종 있었다. 출차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던 이웃이 뜬금없이 나에게 화를 냈다. 자기만 잘 빠져나가면 그만이냐고. 도와달라 하지도 않고 가만 서 계시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그런 내가 얌체처럼 얄미우셨나 보다.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화를 내시기에 억울한 생각에 나를 변호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내가 일이 커져 언성이 높아지면 분명 소가 되어 몇 번이고 되새김질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고 집으로 올라왔지만 이치를 따져보며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애써 부풀리지는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언제쯤이면 먹구름 같은 건 아예 키우지 않는 사람이 될까.
냄새난다고 괴로워하면서도 쓰레기를 내 방에 모아두거나 무심히 똥을 뒤적이는 일은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 똥이든 쓰레기든 얼른 치워버리고 가볍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물론 빨리 버리는 게 최선이 아닌 근심들도 있을 것이다. 내 잘못을 빨리 잊고 마음의 평화만을 고집하는 건 회피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럴 때도 나를 향해 날카로운 화살촉을 바로 날리지 말고 조금 다듬어 보는 거다. 다음엔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까. 어떤 표정을 지으면 내 생각을 상처받지 않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관찰하며 윈윈 전략이라도 짜 보는 거, 그게 좋지 않을까 싶다. 먹구름을 비우면 배가 넓어져 운신의 폭이 자유롭다. 필요 없는 지방 덩어리 태우듯 마음의 다이어트에도 열성을 내야지. 아, 몸무게와의 전쟁이 해결되지 않는 몸의 숙제인데 마음과도 그러려나. <쓰레기는 사절입니다> 커다란 플렌카드 걸고 기선 제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