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도 단풍이 듭니다

老 / 데스 브로피 / Dancing in the rain

by 조승희
데스 브로피 <Dancing in the rain>
다들 벚나무도 단풍이 든다는 걸 모르고 있어.

-벚꽃 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p505



앞통수를 세차게 얻어맞아야만 느낄 수 있는 충격적 기쁨을 주는 소설이 있다. 작가의 트릭을 간파해내기를 원하면서도 결국 속기를 기대하며 읽어나가게 되는 추리소설. 독자는 작가가 공격해 올 것을 알고 방패며 창을 준비하고 책 읽기에 몰입해간다. 그럼에도 앞만 보느라 뒤쪽은 무방비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 허점을 노려 내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때리는 작품은 추리소설로서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하지만 공격은 들어오지 않은 채 전쟁은 끝나가기에 지루하게 보초만 서는 것에 지친 나머지 긴장을 풀게 될 때도 있다. 그 틈을 노린 공격자가 갑자기 날리는 정면 어퍼컷 한 방. 나는 단숨에 처절하게 내팽개쳐진다. KO패.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런 주먹이 날아온 거지?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독자는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책장의 앞 페이지로 돌아가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낚시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보고 급히 달려온 외과의사가 '아니, 아들아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깜짝 놀란다. 도대체 이들은 아이와 어떤 사이일까?


언젠가 퀴즈 책에서 본 이야기다. 나와 비슷하게 주변 사람들도 "글쎄, 친부와 계부 사이?" 답은 아닐 거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들은 부부 사이로, 의사는 소년의 어머니였다. 외과의사는 남자일 것이라는 편견을 노린 퀴즈다.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속아버리고 마는 것은 작가와의 두뇌게임에서 패하는 게 아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것이다. 속이는 사람 없이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이런 공격을 피해나가기란 쉽지가 않다. 우타노 쇼고의 추리소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도 철저히 독자의 고정관념을 노린 트릭을 이용했다. 어느 것 하나 숨기지 않고 명명백백 드러내 보여준다. 그것을 보지 못했던 까닭은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피던 봄철의 벚꽃도 때가 되면 우수수 떨어져 버리고 말듯 나이가 들면 솜털처럼 부드럽던 손은 면도를 잊은 아저씨의 턱처럼 거칠어지고 주름과 검버섯 같은 군식구도 하나 둘 찾아온다. 소수파에 불과하던 흰머리를 속수무책으로 방치하면 어느새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타인, 때론 자신도 종종 사로잡히곤 하던, 젊은이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신체적 아름다움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의 늙음은 난이도 '하'의 미션에 불과하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았던 나에게 외적 미는 젊은이가 가진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불리한 조건이었 뿐이었다. 안경을 써도 책 읽기가 힘들어지고 이어폰 대신 보청기와 친해지고 매일 끓이던 콩나물국이 조금씩 소금탕으로 변해간다면? 이런 감각의 늙음은 난이도 '중'. 누구에게나 공평한 신체나 감각의 낡음은 난감하긴 해도 감당할 수 있을 듯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정작 두려웠던 건 몸뚱이의 낡음에 동반되는 질병과 죽음의 그림자, 무기력과 그에 따른 칩거, 홀로 됨과 외로움 같은 마치 귀신처럼 실체가 없는 것들이었다. 사람이 매일 귀신이 있다고 의식하며 사는 게 아니듯 막연한 두려움일 뿐이었다. 독거노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사로 접할 때, 치매 노인의 행방을 물색하는 안전 안내 문자가 날아올 때, 같이 놀라가자고 권해도 '늙은이가 끼면 재미가 없다, 젊은 사람들끼리 다녀 오너라.' 하며 엄마가 손사래를 치실 때, 문득 나이를 세다가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귀신이 한 번씩 다녀가는 것이었다. 그럴 때 노년기는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100m 달리기의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힘이 고갈되는 장거리 달리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 레이스에 들어섰는지 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경제력의 상실, 질병, 지인의 죽음 등 크고 작은 파도에 시달리며 기력은 소진되어 가겠지. 파도가 살짝 건드린 도미노 조각이 연쇄적으로 쓰러지듯 멈추지 못하고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죽음의 문 앞에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올 때 찾게 되는 귀신 쫓는 부적 같은 그림을 알고 있다. 영국의 할아버지 작가, 데스 브로피의 그림들이다. 그는 노인들이 삶을 즐기는 모습을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내는 화가다. 크지 않은 화폭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엉덩이가 가득하다. 뒤태 화가로도 불린다는데 풍만한 엉덩이가 이토록 사랑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 소개글에 화가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딱 두 가지는 '기쁨과 에너지'라고 밝힌 바가 있다.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한 정신적 유산 두 가지를 물려받은 것 같았다. 내 방에 단 하나의 그림을 걸어야 한다면 어떤 그림을 고를까, 즐겁고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있다. 우물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뭉크의 우울한 그림들 역시 무척 좋아하지만 '밖으로 나와서 햇빛 좀 봐, 삶은 살아가는 거지 생각만 하는 게 아니야, 인생은 즐거운 거야.'라고 속삭이는 데스 브로피의 소박한 그림을 걸어 두고 싶다.


똑똑한 AI의 자동 노출 기능에 의해서일까, 그의 그림들이 가끔 내 SNS 창을 톡톡 두드리곤 한다. 10여 년 전에 읽은 추리 소설이 떠오른 것도 오랜만에 그의 그림 'Dancing in the rain'이 나를 찾아와서다. 이 그림은 <벚꽃 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처럼 나를 전율하게 했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낡아갈 거야. '사랑, 꿈, 열정' 같은 단어들을 욕망하면 추해보일 거야. 몸이 힘든데 크게 즐거운 일이 뭐 있겠어? 늙어보지도 못한 주제에 겁만 많은, 나의 고루한 편견을 박살 내주는 그림이었다. 실체 없는 귀신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저 멀리 도망가듯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다. 'Dancing in the rain'를 보고 나면 알록달록한 우산들을 챙기고 친구들을 불러내어 'Sing in the rain'을 떼창 하며 두 발을 오른쪽 왼쪽으로 부딪히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싶어 진다. 인생 스케치북에 그려 넣고 싶어 자꾸 눈길이 가는 나만의 명작이다.


추리 소설은 "인생의 황금시대는 흘러가버린 무지한 젊은 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미래에 있다." 중국 작가 린위탕의 말을 인용하며 끝이 났다. 인터넷에 늙어서 좋은 점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눈이 보지 않으니 공부를 안 해서 좋고 귀가 들리지 않으니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고 하수들과 바둑을 겨루니 여유가 있어서 좋단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나도 단정한 차림의 노인이 백발머리를 하나로 묶고 지나갈 때 수영복 입은 젊은이가 내 앞을 어슬렁거린다 하더라도 노인에게 더 끌리고 마는 나이가 되었다. 누구나 공평하게 젊음을 지나 늙음으로 가기에 '늙음(老)'이란 단어에 마음의 빗장을 풀 게 될 때가 올 것이다. 해운대 백사장 모래알 같았던 세월이 손에 쥔 잎사귀에서 잎을 하나씩 떨구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찾아만 헤매던 인생의 황금시대를 드디어 누릴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일흔이 넘으신 고모는 동네 경로당에서 막내라고 한다. 며칠 전 고모가 90대 할머니에게 '좋은 때다, 자네만큼만 젊었어도' 라는 말을 들었다며 웃으셨다. 언제나 좋은 때다. 빗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는 기쁨의 에너지가 그림에서 찾은 러브 에이징의 비결이다.



지금도 벚나무는 살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벚나무 이파리는 찬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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