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고백하듯 음악이 시작되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도입부 선율은 기억의 주크박스 같다.어김없이 1997년 4월 27일 어두운 브라운관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스크린 속에는 비에 흠뻑 젖은 한 남자가 길거리를 헤매다 유리창 너머로 피아노를 보고는 영업이 끝난 가게 안으로 뛰어들고 있다. 쿵쿵 쿵쿵. 과거로 돌아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가면 뚫어질 듯 악보를 노려보며 쇼팽을 연주하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기억은 곧장 콩쿠르가 개최되고 있는 장면으로 직행한다. 곱게 빗어 내린 풍성한 단발머리 청년이 무대 앞에 서 있다.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그는 어딘가 모르게 긴장한 듯 보인다. 이번 콩쿠르에서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까지 짊어져 어깨가 무거운 이 청년이 연주하게 될 곡은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다'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레-파미레-도레미-레--
잔잔한 시냇가에 떠다니던 나룻배가 물살이 점점 센 곳으로 이동한다. 장면은 악장을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넘어 마지막 3악장으로 이어진다. 검은 피아노에 비친 손가락은 바람처럼 몰려갔다 몰려왔다 한다. 피아니스트의 풍성했던 머리가 물기 머금은 곱슬머리가 되었다. 그는 이안류에 휘말려 무의지적으로로 휩쓸려가는 사람처럼 음의 급류에 몸을 맡겼다. 무아지경에 빠진 피아니스트에겐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건반 두드리는 소리와 땀방울 흐르는 소리만 보일 뿐이다. 1997년 스크린 앞에 앉아 있던 나도 긴장되는 그 짧은 순간 침을 꼴깍 삼키며 눈과 귀를 열었었다. 피아니스트는 마지막 음을 완벽하게 연주하고는 그대로 쓰러지고 만다.
자신도 모르게 감긴 눈과 저절로 벌어진 입. 누가 봐도 사랑의 절정에 이른 여인의 얼굴이다. 온몸과 마음을 누군가에게 내맡겨버리고 만 듯 무아지경에 빠졌다. 불경스럽게도 나는 수녀 형상에서 무언가 에로틱한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강렬한 기쁨을 느꼈다. 위 사진은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천사의 부름을 받고 구름 위에 앉아 하늘로 올라가는 수녀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만든 교회 예배당 제단의 일부분을 찍은 사진이다. 작품은 3m의 가량의 높이로 대리석으로 조각되었다. 굽슬굽슬한 천사의 머리며 그들의 구겨진 옷 주름, 엄지와 검지로 우아하게 잡은 황금빛 화살, 쏟아져 내리는 영광을 황금빛 빛줄기로 화려하게 재현해 낸 그의 솜씨에 경외감이 인다. 축 늘어진 몸과 팔, 그리고 맨발. 자신을 놓아버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완전한 법락의 기쁨을 이다지도 생생하게 묘사해낼 수 있다니 놀라웠다.
16세기 스페인의 수녀였던 성 테레사는 저서 <영혼의 서>에 어느 날 경험했던 종교적인 황홀경에 대해 '무언가 나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는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의 고통이 따라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라고 썼다. 진리를 깨달은 자, 절대자의 부름을 들은 자가 느끼는 기쁨을 법열이라 한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가 상상해보게 되는 작품이다.불교에도 '열반락(涅槃樂)'이란 말이 있다. 열반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끈다'는 뜻으로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무상과 무아, 고' 같은 단어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마음을 비우도록 많은 힘이 되어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는 늘 들고 다니기에는 코끼리 무게처럼 버거웠다. 욕심을 다 내려놓으라는 말도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도 모두가 괴로움이란 말도 도무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라는 것 없이 텅 비우면 무슨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 것인가. 깨치지도 못한 자가 깨치고 난 후까지 걱정을 하고 앉았는 폼이 선무당같이 어설펐다.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고 내 마음에 들어온 단어가 '열반락'이다.
열반을 자의식이 사라져 고통이 없어지고, 욕망도 꺼져버린 상태라 한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물으면 무어라 답해야 할까."겪어 본 적 없어 모릅니다"가 정답 인지 "걲어봤어도 그것인지 모릅니다."가 정답일런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의 광기 어린 열정은 기쁨이 아닌 고통이었다. 콩쿠르장에서 쓰러진 피아니스트는 정신병원을 돌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지만 10년의 긴 시간에도 음악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기대도 목적도 없이 단지 피아노 앞에 앉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신나게 연주를 마치고 행복하게 웃는다. 자신을 되찾아가는 길을 발견한 기쁨의 미소일까.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길 때, 키 큰 미루나무가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볼 때, 언덕처럼 쌓인 깻잎에 한 장 한 장 양념을 바를 때, 성 테레사의 법열에 고개를 끄덕일 때, 그냥 시간이 무심히 흘렀다. 나라고 할 것이 없었다. 고집을 내려놓아 근심 없이 평안한 상태, 그로 인한 기쁨을 '열반락'이라 한다면 굳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천사가 와서 화살을 날려주길 기다릴 것도 없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열반락'이 얼마든지 있었다. 일곱 개의 음에서 쏟아내는 선율에 전율할 때처럼 말이다.
햇빛 대신 강렬한 장대비가 우렁차게 쏟아져 내린다. 먼 산은 안개로 덮였다. 18세의 나이로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된 청년의 연주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본다.
레-파미레-도레미-레--
이 익숙한 음률은 <샤인>을 상영하던 영화관으로, 베르니니의 조각품으로 나를 이끌었다. 광활한 러시아의 바람을 상상하며 넓은 들판에 무릎을 꿇은 어떤 이의 정렬적이고도 감미로운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 드디어 그 여정이 끝나려고 하는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마지막 절정을 향해 합세하여 광풍을 일으킨다. 작은 조각배처럼 나는 이리저리 정신없이 휘몰려간다. 살포시 감았던 눈이 번뜩 뜨인다. 지휘자의 손놀림에 내 고개가 지휘봉처럼 끄덕이고 흔들린다. 피아니스트의 어깨와 다리가 몇 번씩이나 강렬한 반동으로 뜰석이자 입이 벌어진다.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마지막 악절에 이르면 피아니스트의 움직임은 격렬해지고 그의 손이 먼저 저 눈부신 열락의 빛 속으로 가닿길 갈망하는 듯 하늘을 향해 높이 뻗치길 반복한다. 나 역시 빛을 좇듯 고개가 절로 젖혀진다. 닫히기 직전인 하늘 문으로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자, 이제 날아오르자' 고 눈빛을 교환한다. 마지막 발을 힘껏 내딛자 '쾅'하고 문이 닫힌다.
무사히 빛 속으로 들어온 피아니스트는 건재했다. 그것을 축복하듯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기립박수를 쳤다. 화면 밖의 청중도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는 함께 달린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관객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정신을 차려보니 40여분이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처럼 광속으로 지나가버렸다. 장대 같은 비가 함께 그쳤다. 건너편 산에 안개가 걷혔고 고운 새소리가 다시 들린다. 번뇌를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열락의 소나기에 나를 흠뻑 젖게 둔 시간이었다. 깨끗이 씻긴 풍경처럼 나도 맑아지고 선명해졌을 것만 같다.